'사건사고 보도와 트라우마' 주제로 이정애 SBS 부국장 워크숍 진행
작성일 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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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향해 뛰어가는 사람들” 건강한 취재를 위한 따뜻한 조언
언론과 트라우마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정애 SBS 부국장, '사건사고 보도와 트라우마' 주제로 워크숍 진행
글: 신진 JTBC 기자
어쩌면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달리는 차가 인도로 돌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수백 명을 태운 배가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내가 탄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것이라는 믿음….
기자들은 이 믿음이 부질없이 깨지는 순간을 누구보다 자주 겪는다. 나도 그랬다. 2013년 일을 시작한 뒤 대형 참사를 쉬지 않고 마주했다. 세월호, 이태원, 오송 지하차도 침수, 제주항공…. 이런 참사는 1회성 취재로 끝나지 않는다. 기자들은 매 주기마다 다시 그날로 되돌아간다. 유가족과 생존자를 쉼 없이 만나고 사건의 1부터 100까지 여러 차례 훑는다. 사고 현장에도 여러 번 방문한다.
대형 참사뿐만이 아니다. 아동 학대 사망 사건, 유명인의 자살,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난 정치적 혐오까지, 하나가 끝났다 하면 숨 돌릴 틈 없이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이걸 잘 하라고 존재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누구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어느 순간부터 ‘믿음의 항상성’이 박살났음을 느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 많은 기자들이 일반적인 수준 이상의 불안증, 불면증 등을 겪고 있지 않을까 종종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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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을 진행한 이정애 SBS 부국장의 이력과 사진>
그래서 이정애 기자의 ‘사건사고 취재와 트라우마’ 워크숍은 의미가 컸다. 먼저 이 기자의 존재 자체로 큰 위안이 되는 선배였다. SBS에서 최초로 시사고발 프로그램 ‘뉴스추적’을 담당한 여기자, 경험을 토대로 트라우마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 연구자, 언론인트라우마위원장으로 가이드북 제작을 총괄한 권위있는 실무자, 두 아이를 둔 30년 차 기자라는 사실이 꼼꼼하고 진정성 있는 강연만큼이나 든든하게 느껴졌다.
‘아는 것은 힘’이라는 말은 맞았다. 강연은 다양한 조사치와 통계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그랬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깨달음과 위로를 동시에 얻었다. 해외에선 경험이 부족한 초년생이나 사건사고에 오래 노출된 베테랑 기자에게서 심리적 외상이 많이 나타나는데, 국내 언론인은 6~15년 차에서도 굉장히 높은 비율이 나왔다는 결과가 인상 깊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잇단 대형 사고와 정치적 혼란의 영향일 것이란 분석이 덧붙여졌다.
트라우마를 겪는 취재원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 또한 매우 유익했다. 이 기자 본인이 성매매 여성, 성폭행 피해 아동 등을 취재하며 느꼈던 감정과 후회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공감과 이해가 한층 깊어지는 대목이었다. 심리적 외상을 가진 취재원들은 취재 과정에서 극심한 피로를 겪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반대로 적극적이고 진심 어린 취재진의 태도가 뒷받침된다면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어떤 태도로 취재에 임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구체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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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언론 박물관 뉴지엄(Newseum) 벽면에 적힌 로드 드레어(Rod Dreher)의 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도망가는 게 아니라 재난 쪽을 향해 뛰어가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경찰관, 소방관, 그리고 기자들이죠.”
기자들이 트라우마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 언론사 중 트라우마 관련 가이드라인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곳은 매우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기자는 이 대목까지 빠짐없이 짚어 주었다. 시종일관 따뜻한 눈빛과 목소리로, 긴장될 때 유용한 호흡법과 스트레스 해소법도 일러줬다. 앎이 주는 충만함, 위로가 주는 따스함에 열두 기자들의 열정까지 더해져 3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자리를 마련해준 삼성언론재단에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