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청구] "누구나 알 수 있다면 세상은 바뀐다" 정진임 소장의 '취재와 정보공개' 강의
작성일 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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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기자들에게 전하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합법적으로 받아내는 법'
글: 김수환 브릿지경제 기자
비가 오는 궂은 날씨 탓에 강의장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그러나 강의 시간이 임박하자 퇴근 후 걸음을 재촉하며 하나둘 모여든 참석자들로 채워졌다.
이달 24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삼성언론재단 주최로 열린 '취재와 정보공개: 정보공개청구 잘 하는 방법' 강의에서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누구나 알 수 있다면 세상은 바뀐다”는 인상적인 한마디로 정보공개의 의미를 압축했다.
◆ 예산감시에서 생활안전까지, 정보공개 영역의 확장
정 소장은 정보공개법이 1996년 제정돼 1998년 시행된 이후 의미 있는 개정이 2004년 한 번뿐이라며, 현재 사회 요구에 비해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공개청구의 처리기한은 법정 공휴일을 제외한 10일이다. 복잡한 사안의 경우 최대 한 달까지 걸릴 수 있지만, 통상 2주 정도 소요된다. 초기에는 공무원 업무추진비 같은 ‘나라 곳간’ 감시가 주였다면, 이제는 일상과 관련한 정보공개가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싱크홀 정보공개, 비리 유치원 어린이집 명단 공개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불안하기 때문에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공개가 단순히 예산 감시를 넘어 시민의 일상적 안전과 직결된 권리로 확장됐다는 의미다.
◆ 정보공개청구의 핵심은 ‘설계’
정 소장은 정보공개청구를 잘하는 핵심을 ‘설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17여년간 정보공개청구를 해오면서 깨달은 것은 영감이 떠올라도 바로 청구서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먼저 검색을 해서 공공기관이 어떤 정보들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청구한다”고 설명했다.
정 소장은 구글 검색 시 ‘site:go.kr’ 같은 검색 연산자를 활용해 공공기관 정보를 우선 확인하고, 법령을 살펴본 뒤 청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특히 법령에서 ‘하여야’를 검색해 의무사항을 먼저 파악하라고 조언했다. 공공기록물관리법 제17조처럼 주요 회의의 회의록 작성 의무 조항을 활용하면 “빼도 박도 못하게” 구체적인 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법대로 일하고, 법대로 일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며 “기록이 없으면 법대로 일하지 않았거나 일을 안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17개 시도 비교와 정확한 용어 사용법
실전 팁으로는 비교대조군을 만들어 청구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전기차 화재 진압장비 현황의 경우, 17개 광역자치단체 소방본부에 모두 청구하면 1등과 꼴찌가 나와서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확한 용어를 확인한 다음에 청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에 ‘싱크홀’ 현황을 청구했을 때 “해당 정보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으나, 행정용어인 ‘공동(空洞)’ 현황으로 재청구하니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례도 공유했다.
강의 중간중간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국회 보좌진 정보공개 가능 범위, 주소가 지워진 자료 보완법, 위치 좌표 제공 여부 등 실무 궁금증에 대해 정 소장은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 비공개 사유 해석이 더 중요
정 소장은 “정보공개청구를 잘한다는 것은 원하는 자료를 잘 받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왜 비공개를 받았는지’를 잘 판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공개 사유는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1호부터 8호로 정해져 있다. 같은 사안도 시기에 따라 영업비밀(7호)에서 수사·재판 관련(4호)으로 사유가 바뀌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들은 줄 만한 자료를 달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공개를 안 하려는 걸 찾는 게 기자”라며 “비공개 답변을 받으면 잘 청구한 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비공개 사유 변화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취재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다.
◆ 장기 프로젝트와 ‘취하’ 압박 대처법
검찰 특수활동비 정보공개에 3년 6개월이 걸린 사례처럼 탐사보도에서는 긴 호흡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연간 180만-200만 건의 정보공개청구가 행정기관에 접수되는 현실에서, 공무원들이 청구 취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능하면 응하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다.
그는 “공무원이 공식적인 문서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취하(취소)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며 “담당 기관이 아닐 경우라도 취하 대신 정보공개법의 이송을 요청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공식적인 답변인 정보공개 결정통지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의를 마무리하며 정 소장은 정보공개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기자들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정보공개청구를 잘하기 위해 정보공개센터는 18년째 정부 지원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시민 후원으로만 운영되고 있다”며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서 좌절감을 느끼는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기자회원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예정된 2시간을 20여분 가량 넘겨 진행된 이번 강의에서 정 소장은 생생한 경험담과 구체적인 노하우를 담았다. 이에 화답하듯 참석한 기자들의 적극적인 질문과 집중도 높은 참여, 그리고 강의 종료 후 줄을 서서 강사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현장의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이날 강의에 현직 기자 25여 명이 모여 정진임 소장의 노하우를 집중하며 듣고 있다. 온라인 중계에는 기자 30여명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