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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글쓰기2]전현진 기자 <뽕의 계보> 글쓰기 사례 강의

작성일 2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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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가 만드는 이야기의 힘

계획은 유연하게, 취재는 빼곡하게


글: 오수영 SBS Biz 기자


구속영장 심사를 받으러 가는 국회의원 A의 넥타이는 그가 앞서 언제 맸던 무슨 색의 것이었나. 그의 구두는 광이 났나. 지지자들이 법원 앞을 가득 메웠나, 아니면 텅 비었나.

경향신문 전현진 기자가 A의 '멘트'를 단순 전달할 게 아니라 "이런 걸 '묘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들이다. 전반적 '장면'을 그려야만 '다음 장면'이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된다는 거다.

그는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하나의 주제를 담은 범죄 논픽션을 쓰겠다는 게 목표였고, 그걸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늘 고민하고 있었으며, 그 주제를 뭘로 할지 늘 고민했다”고 본격적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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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진 경향신문 기자가 그의 논픽션 저서 <뽕의 계보>를 쓰기까지의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 하나의 이야기를 쓰려다가


전 기자는 취재를 통해 ‘마약왕’의 계보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취재 내용이 풍부해질수록 ‘하나의 이야기론 쓸 수 없겠다’는 결론을 냈다. ‘거물’들이 여럿이었고, 에피소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주제를 ‘마약왕’으로 확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는 경찰관의 한마디였다. “유명한 마약상이 최근에 잡혔”는데 “이 사람은 마약 시장의 가격을 조율할 수 있는 거물”이라는 거였다. 이번에 잡힌 그 자가 약을 풀면 가격이 떨어지고, 안 풀면 가격이 묶이거나 오른다는 거다.


△ 변호사와 검사 인터뷰를 하려다가


주제를 정한 전 기자가 원래 쓰려던 책의 형태는 ‘법정 공방’이었다. 당시 법조팀이었던 그는 재판 취재를 이어가다, 이미 구속된 ‘마약왕’ 당사자와는 직접 대화를 할 수 없다는 크나큰 한계를 깊이 체감했다. 변호사들과 검사들을 인터뷰 하긴 했으나, 변호사는 마약왕에 관심이 없었고 검사도 별 도움이 안 됐다.


법조문 취재라도 하던 전 기자가 마약 재활 전문가를 인터뷰 하다 들은 말이 그의 취재 방향을 바꿨다. “옛날에는 다 자기들이 마약왕인 줄 알았겠지만 이젠 아니다. 한 왕조가 끝났다.”


△ ‘최후의 황제’를 찾으려다가


그 말을 듣고 ‘최후의 황제’까지 이어지는 ‘마약상의 계보’를 파헤치겠다고 생각한 게 전 기자의 저서 <뽕의 계보>의 시작이었다. 마약상들을 깊이 있게 취재하기 위해 전국 교도소에 편지를 보냈고, 수번을 모르고 보냈더라도 적임자를 찾아준 교도관들 덕분에 꽤 많은 답장을 받게 됐다. 강의에선 그가 수용자들과 주고 받은 수십여 통의 편지 중 일부 문장과 봉투 사진이 공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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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진 기자가 수많은 수감자들과 소통하던 편지의 일부를 보여주며 취재담을 소개하고 있다.> 


△ 완벽해 보이던 그에게도 후회가


일본어와 중국어를 할 줄 알아서 해외 자료도 거침없이 찾아볼 만큼 ‘능력자’인 전현진 기자. 대단하게만 보인 그에게도 뼈저린 후회가 남는 순간이 있었으니, ‘마약왕 중의 마약왕’과의 만남을 약간 미루다 그가 사망해버린 일이었다. 무연고 노인이던 그의 유품 정리를 전 기자가 하게 된 건 운명의 장난처럼 보이기도 했다.


강의가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에는 ‘수용자들과 펜팔로 취재할 때 윤리적 고민은 없었는지’ 등 10개 가까운 질문이 쏟아졌다. 전 기자는 “좋은 질문”이라며 “수용자가 편지를 통해 본인이 수감된 계기가 된 범죄 이외 새로운 혐의를 얘기하는 일까지는 없었다”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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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강의는 실시간 온라인으로도 중계돼 지역 기자 등 10여 명이 함께 수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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