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보도로 개척하는 기자 이력1]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개척보도의 3요소 - 공간' 첫번째 강의
작성일 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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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 번 가보기, 개척 보도의 출발점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개척 보도로 개척하는 기자 이력’ 첫번째 강의
글: 윤준호 세계일보 기자
기자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언론을 향한 사람들의 불신, 언론 산업의 미래나 자사 매체의 존립은 기자들을 따라다니는 걱정거리다.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불안은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고민은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달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삼성언론재단 주최로 열린 ‘개척 보도로 개척하는 기자 이력’ 강의를 열며 그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붙잡고 고민하기보다 매일 반복되는 기사 발제와 취재 과정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기자가 집중해야 할 것은 직업인으로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 기자가 하는 진정한 일
안 교수는 재미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사의 전형으로서 ‘개척 보도(Enterprise Reporting)’를 제시했다. 그는 가디언 기자 존 헨리와 나눴던 대화를 소개했다. 존 헨리는 가디언 지면의 7할은 ‘남들도 쓰는 기사’고 나머지 3할은 ‘개척 보도’라고 했는데, 이때 개척 보도를 ‘직접 찾아낸 기사’라고 했다. ‘(그런 기사) 발제를 어떻게 하냐’는 안 교수 질문에 그는 “하루 수백 건씩 쏟아지는 통신 기사를 발전시키는 것인데, 우리는 ‘그냥’ 가서 사람들을 만난다”라고 답했다. 가령 교육부에서 중대한 정책을 발표하는 날이면 학교를 찾아가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을 만나 그 정책이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듣는다는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 교과서 한 대목에는 기자가 진실을 발굴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단계별로 나와 있다. 1단계는 취재원이 제공한 보도자료와 발표문 살피기고, 2단계는 발생 사건 취재, 관찰과 목격, 보도를 위한 개척(reportorial enterprise), 3단계는 맥락과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책은 “1단계를 바탕으로 기사 쓰는 건 기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며 “2단계부터 기자의 일이 시작된다”고 했다. 안 교수는 이를 인용하며 개척 보도는 기자가 하는 진정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개척 보도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안 교수는 TV 프로그램 ‘스타트렉’에 나오는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를 언급했다. 이 우주선에 탄 이들은 문명을 찾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지만 이 문명이 어디에 있을지, 발견한 문명이 호의적일지 적대적일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호는 문명을 찾아 떠난다. 개척 보도 역시 어떤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위험 부담이 따르지만 이야깃거리라는 목적지를 찾아 나서는 항해다.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이날 강의에서 안수찬 교수가 공간 개척 보도 유형 중 하나로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고 있다.>
◆ 공간에 주목하기
개척 보도의 삼 요소로 꼽은 ‘공간’과 ‘사람’, ‘숫자’ 중 안 교수는 이날 수업에서 ‘공간’에 주목하는 르포에 관해 설명했다. 안 교수는 르포의 방법으로 목격과 관찰, 당사자의 증언이나 증언이 담긴 문서 재구성을 들었다. 목격은 당사자로서 사건을 보는 것이고, 관찰은 현장의 모든 자극과 반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간 개척 보도의 사례로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의 ‘211호의 치명적 침묵’을 소개했다.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이 기사는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211호 강의실’이란 공간에 초점을 맞췄다. 그날 이 강의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는 선량한 학생들조차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안 교수는 “이 기사는 사건으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에 보도됐다”며 “사건이나 사고 현장을 너무 빨리 가려고 하기보단 현장과 당사자 중심으로 정보를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연 내내 반복된 메시지는 “그냥 한 번 가보라”는 것이었다. 이는 쏟아지는 보도자료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보도자료는 현재 가장 시의성 있는 이슈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특히 과학적 조사를 바탕으로 쓰인 연구보고서는 필요한 모든 재료를 손질해 포장한 ‘밀 키트’와 같은데, 이러한 중대 의제를 담은 자료와 관련 있는 공간을 떠올려 보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르포를 하는 방법으로 ‘자료조사’와 ‘사전 인터뷰’, ‘현장 관찰’에 같은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3·3·3 규칙’을 말했다. 스트레이트 기사 한 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자료조사를 해두면 현장에서 돌발 상황에 부딪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 구성 방식으론 ‘더블버거 구조’를 이야기했다. 기사 시작과 끝을 현장 묘사로 두고, 중간에 관련 통계나 설명 등을 넣는 식이다. 또 건조하면서 담담하게 써야 기자가 취재하며 느낀 생생한 감정을 독자도 전달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공간을 발굴하고 포착하는 과정이 재밌어야 한다며 ‘내가 쓴 기사 한 편에 집중하는 철저히 이기적인 태도’를 거듭 강조했다. 누군가 인정해 주길 기대하기보다 자신이 쓰는 기사에 의미와 재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제가 킬 되면(반려당하면) 잊어버리세요. 통제할 수 있는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거기에 집중하세요. 취재하면서 재미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세요”.
<이날 강의에 현직 기자 30여 명이 모여 공간 개척 보도 사례에 관해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