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사로잡는 글쓰기3]'모범기사 사례와 스트레이트 기사 다시 쓰기' 박재영 교수 강의
작성일 25.07.18
본문
당사자가 전부는 아니다, 등잔 밑에 마이크를 건네라!
“같은 소재, 다른 기사” - 박재영 교수의 접근
'독자를 사로잡는 글쓰기' 세번째 강의
글: 정진주 데일리안 기자
“제가 학생들에게 문신 새기라고 했어요. 문신”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 강의실에서 난데없이 문신을 권하는 이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다. 박 교수의 문신 권유에 약 30명의 학생 사이에선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비 내리는 저녁, 강의실에는 20대 청년부터 40대로 보이는 중장년까지 다양한 연령 대의 기자들이 모였다. 이 날은 마지막으로 3회차 강의가 열렸다. 첫 강의에선 흡인력을 높이는 글쓰기 노하우를 배웠고 이를 적용해 기획과 스트레이트 기사를 과제로 제출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강의는 이 과제들을 교재 삼아 잘 쓴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들을 짚어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일과 후 특강에 참석한 기자들이 박재영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교수가 문신을 새기라고 강조한 것은 바로 ‘A의 지인을 취재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A란 취재에서 핵심 인물을 말한다. 사건이라면 가해자나 피해자, 사회적 문제라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계층처럼 기사 주제에 해당하거나 가장 밀접한 인물이다. 기자들은 보통 당사자인 ‘A’를 직접 취재한다.
박 교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했다. 핵심인물의 지인이라는 ‘등잔 밑’에 주목한 것이다. A는 누구나 주목하는 인물이어서 인터뷰가 어렵지만 A의 지인 취재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점이 기자들에겐 좋은 아이템이란 것이다. A의 지인을 통해 더 객관성을 입증할 수 있으며 풍부한 맥락을 확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A 역시 재조명된다.
그는 “핵심 인물에 매달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라며 “오히려 핵심 인물에 매달리지 않음으로써 경쟁하는 타사 기자와는 전혀 다른 기사를 쓰게 됩니다.”라고 했다.
박 교수는 “한국의 그 많은 기자가 지난 1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사를 썼겠어요. 하늘 아래 새로운 기사 없습니다.”라면서 “중요한 건 접근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기사 아이템이 비슷해도 접근 방식을 창의적으로 바꾼다면 기사는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장애인 마라톤 기사를 작성한다면 장애인 마라토너가 아닌 가이드러너 시점으로 보는 식이다.
<박재영 교수가 기자들이 제출한 과제를 사례로 삼아 잘 된 부분과 다시 쓰면 좋을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전 강의와 같이 기사는 장면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조언도 반복됐다. 과제 기사 중 하나인 도망가던 음주운전자를 추격한 시민의 기사가 모범사례로 소개됐다. 음주운전 피의자가 차량을 버리고 건물로 도주하자 이를 목격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격에 나섰고 경찰과 공조해 피의자를 검거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담았다.
박 교수는 기사 속 시제의 변화에 주목했다. 과거 추격장면으로 시작한 기사는 현재 시점인 시상 장면으로 전환됐다가 다시 추격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서술되고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시민의 인터뷰로 마무리된다. 박 교수는 이를 두고 “짧은 기사임에도 벌써 과거-현재가 두 번 왕복하게 되면서 독자로서는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처럼 보여진다”고 했다.
또한 기사 구조가 일반적인 피라미드 구조가 아닌 역삼각형으로 전개됐다는 점에서도 호평했다. ‘누가 어떻게 붙잡혔다’는 결과보다 붙잡히기까지의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흥미로운 기사가 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시민, 도주자, 경찰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하면서 인물 간의 구도가 입체화돼 있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로 짚었다. 또 다른 과제인 공사장 내 외국인 산재 기사에서도 사망자, 사망자의 여동생과 친구 등 여러 인물이 일체감 있게 서술된 점을 좋은 사례로 소개했다.
이 시민과 경찰의 공조, 공사장 내 외국인 산재 등 두 기사는 강의가 끝날 무렵 가장 잘 쓴 기사로서 뽑혔다.
이번 강의는 신청자가 몰려 조기 마감돼 수강 대기자가 많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종이를 넘기는 소리, 볼펜으로 빠르게 메모하는 소리가 교차했다. 쉬는 시간도 없이 2시간의 강의에도 학생들의 눈과 손은 내내 분주했다. 방법은 달랐지만, 기자들이라 그런지 모두가 기록에 열중하고 있었다.
끝으로 박 교수는 실험적인 도전 자세에 대해 강조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기사 아이템 좋은 거 많고요, 용기를 갖고 많이 시도해봅시다.”
※ 박재영 교수가 강의 중 추천한 모범 기사
- 한국일보 경북 산불 현장 특별취재 "눈 마주쳤는데 못 구해"… 가슴 속 불길은 꺼질 줄 몰랐다 | 한국일보
- 동아일보 '환생' 시리즈 시리즈|Project|디오리지널
- 한겨레신문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시리즈 [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숨 멈춰야 해방되는 곳…기자가 뛰어든 요양원은 ‘감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