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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習] 혁신이 이끄는 경제 (올해 노벨경제학상 주제와 관련해) - 김두얼 명지대 교수 초청

작성일 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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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출입 기자들의 공부모임인 BOK習(복습)은 지난 10월 24일 김두얼 교수(명지대 경제학과)를 초청해 '혁신이 이끄는 경제(올해 노벨경제학상 주제와 관련해)'을 주제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모임에서 제공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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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올해 노벨경제학상 주제는 ‘혁신’인가

최근 몇 년 동안 노벨경제학상은 경제사를 토대로 제도와 성장의 관계를 해명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2023년 여성의 경제활동사를 통해 경제학 전반에 영향을 미친 클라우디아 골딘에 이어, 2025년에는 조엘 모키르, 필립 아기온, 피터 하윗이 수상했다. 올해는 ‘혁신’이란 주제로 연구한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경제성장의 원천’에서 혁신의 의미를 살펴보자. 경제성장은 원료→생산공정→제품이라는 단순 도식에서 출발했다. 같은 원료로 더 좋은 결과를 내는 힘이 무엇인가. 전통 성장론은 자본 축적(솔로)과 인적자본(베커)을 강조했고, 최근 제도론(아세모글루·존슨·로빈슨)은 계약·재산권 등 ‘규칙’의 역할을 부각했다. 여기에 이번 수상자들은 ‘기업가의 혁신’이라는 행위 주체를 전면에 올려놓는다.

기업가의 혁신이란 지점에서 고전적 논쟁이 소환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비생산적·착취적 존재로 보았지만,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동력을 ‘창조적 파괴’로 규정하며 기업가를 핵심 주체로 본다. 다만 슘페터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업가가 취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이는 ‘혁신을 지속시키려면 어떤 제도·정책 조합이 필요한가’라는 오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번 노벨상은 바로 그 질문에 역사·이론·실증으로 답한 연구들을 종합적으로 조명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 전반적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금, ‘혁신’ 메시지를 앞세운 선택이라는 맥락도 제시됐다.


2. 조엘 모키어: 산업혁명의 비밀—과학, ‘미시발명’, 성장의 문화

올해 수상자 중 한 명인 조엘 모키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산업혁명을 ‘연속적·가속적 기술진보의 출현”으로 규정하고, 왜 하필 1800년대 영국에서 폭발했는지에 답한다. 핵심은 두 층위의 발명 구분이다. (1) 증기기관 같은 ‘거시발명(매크로 인벤션)’과 (2) 새지 않는 패킹, 재료 선택, 공정의 자잘한 개선처럼 상업화·생산성 향상의 결정적 고리를 이루는 ‘미시발명(마이크로 인벤션)’. 산업혁명은 둘의 상호보완으로만 현실화됐다.

영국은 프랑스 등과 달리 미시발명이 폭넓고 지속적으로 축적됐다. 그 배경을 두고 모키어는 ‘성장의 문화(culture of growth)’로 설명한다. 지식·아이디어를 개방적으로 교환하고 실용적 유용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버밍엄 ‘루나 소사이어티’ 같은 사적 모임, 편지 네트워크와 학회·저널의 공개 토론 문화—가 발명과 개선의 연쇄를 촉발했다. 과학 그 자체가 곧바로 산업으로 전환된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 사고방식(논증·검증·재현·반론)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며 미시발명 생태계를 떠받쳤다는 해석이다. 요컨대 모키어는 산업혁명을 ‘과학·문화·네트워크’가 만들어낸 혁신 체제의 탄생으로 읽어, 오늘날의 혁신정책이 하드웨어(자본·설비)만큼 소프트 인프라(지식 공유, 개방적 토론, 실용주의 규범)를 갖춰야 함을 시사한다.


3. 아기옹–하윗: 경쟁과 혁신의 역(逆)U자—정책의 미세조율과 한국·AI 시사점

또 다른 두 명의 수상자인 필리프 아기옹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와 피터 하윗 미 브라운대 교수는 슘페터의 직관을 엄밀한 모형과 실증으로 확장했다. 결론은 ‘경쟁–혁신’의 관계가 단조(單調)가 아니라 역U자라는 것. 경쟁이 너무 약하면 후발기업의 추격 인센티브가 약하고, 너무 강하면 혁신의 사후보상(특허·초과이윤)이 증발해 R&D 유인이 꺼진다. 산업별·국가별로 ‘최적 경쟁 수준’이 존재하며, 정책은 이 균형점을 향해 미세조정되어야 한다고 연구했다. 독점적 지위를 적절히 제한하되, 혁신 보상과 지식재산 보호를 통해 탐색·모험을 가능케 하는 조합이 적절한 지점이란 해석이다.

이 프레임은 산업정책 논쟁에도 새 관점을 준다. 1990년대 이후 ‘정부 개입 회의론’이 주류였지만, 아기옹–하윗의 연구는 조건부·증거 기반의 산업정책—특정 병목 해소, 기술경계 확장, 인적자본·지식 인프라 구축—가 혁신을 촉진할 여지가 있음을 보였다. 

한국의 경우 높은 민간 R&D 비중과 풍부한 특허 활동이 있는 상태다. 이에 한국은 평균 이상의 혁신 역량을 이미 보유했지만, ‘더 많은 개입’ 정책이 아니라 ‘더 정확한 개입(타게팅·평가·출구)’이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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