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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Job-多)한 Ai 연구소] AI, 점성술을 대체할 수 있을까? - 김동완 사주명리학자(동국대 겸임교수) 초청

작성일 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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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Job-多)한 Ai 연구소'는 Ai에 관심이 많은 5~8년 차 주니어 기자들이 모여 Ai가 다양한 직업군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18일 김동완 사주명리학자(동국대 겸임교수)를 초청해 'AI, 점성술을 대체할 수 있을까' 주제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모임에서 제공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1594년 9월 28일]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서 적을 치는 일의 길흉을 점쳤다. 처음에는 '활이 화살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다시 점을 쳤다. '산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바람이 불순해서 흉도 안쪽 바다로 옮겨 진을 치고 머물렀다.


[1596년 1월 10일]

이른 아침에 홀로 앉아 왜적이 다시 나타날지 점을 쳤다. '수레의 앞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는 점괘가 나왔다. 다시 점을 쳤다. '군왕을 뵙는 것과 같다'가 나왔다. 두 괘 모두 기쁘고 길한 점괘였다.


<난중일기>의 일부입니다. 실시간 위성사진도, 기상청 예보도 없던 그 시절.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앞두고 늘 했던 건 바로 점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난중일기>에는 점에 관한 내용만 7번, 꿈 해몽에 관한 내용은 41번이나 나옵니다. 아무리 이순신 장군이라지만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의 심란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나 봅니다. 전투를 목전에 둔 상황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중요한 시험이나 인생의 각종 대소사를 앞두고 느끼는 간절함의 무게가 결코 그보다 가볍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생이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 위 거북선만큼이나 아슬아슬할 때, 많은 이들이 타로점이나 사주풀이, 관상을 보러 가고는 하죠. 물론 점을 친다는 것은 이성과 논리보다 인간의 직관이 크게 작용하는 분야겠지만, AI의 영향을 아예 피하지는 못하는 추세입니다. AI가 내다본 나의 미래, 믿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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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명을 믿으시나요?


철저히 이성이 지배할 것만 같은 과학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대.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이성과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로 가득하고, 무속신앙이나 사주풀이, 타로 같은 점성술은 기술의 발전을 비웃듯 유독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습니다. "근거 없는 얘기는 믿지 않아"라며 큰소리치던 이들도, '용하다'는 신당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긴장하게 되죠. 가끔은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은근히 궁금해질 때면 나도 모르게 '운명'이란 단어의 실체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사주나 타로를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들은 저마다 꽤 인기를 얻고 있고, 온라인 사주풀이 사이트는 연간 수백억 원대의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운명을 스스로 점치는 점성술사들끼리 모여 연애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는가 하면, AI로 사주풀이를 보는 프롬프트가 유행처럼 돌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점성술이 100% 인간의 직관이나 '신기(神氣)'에만 의존하는 건 아닙니다. 사주풀이의 경우 <주역>이나 <초씨역림> 같은 고서나 만세력을 바탕으로 해석하고, 타로점 또한 내담자가 뽑은 카드를 보고 이야기하는 방식이니까요.


잡다한 Ai 연구소는 상담심리 및 사주명리학 분야 권위자인 김동완 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교수를 만났습니다. 김 교수는 개그맨 유재석 씨와 신동엽 씨 자녀의 작명을 한 것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한의원과 서당을 운영하던 조부의 영향으로 역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동양철학뿐 아니라 교육상담심리학 등을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폭넓게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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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양오행, 내 인생의 '큰 줄기'


김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연도, 월, 일, 시간에 따라 '인생의 큰 줄기'를 타고난다"라고 했습니다. 대개 사주풀이는 생년월일과 생시를 바탕으로 산출한 음양오행 분석으로 시작하는데요, 오행은 '목·화·토·금·수' 다섯 가지로 나뉘며, 각자 어느 어떤 기운을 더 많이, 혹은 덜 타고났는지에 따라 큰 틀에서 성향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오행은 각각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목(木):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성향. 배려심이 깊고, 인정 욕구와 명예욕이 있음.

화(火):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성격, 뛰어난 표현력과 강한 모험심을 가짐.

토(土):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냄. 외교관에게 많음.

금(金): 완벽주의, 빈틈없이 처리하려는 성향으로, MBTI상 'S'나 'T' 기질이 강함.

수(水): 사고력이 뛰어나지만, 동시에 자잘한 걱정과 생각이 많고 소심할 때가 있음.


다만 김 교수는 "운명은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의 삶은 타고난 사주뿐 아니라 시대와 국가의 흐름, 즉 '시운(時運)'과 결합되어 결정되기 때문이죠. 운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인 송나라, 명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서에 기반한 해석이 오늘날의 현실과 맞지 않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면 요즘 이성에게 인기를 끄는 기운으로 알려진 도화살. 일부 연예인 사주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화에 부여된 해석과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중국의 오래된 역서에서는 도화살을 부정적으로 보았고, 조선시대에는 주색잡기에 빠지는 기질로 해석했습니다. 김 교수가 과거 철학관을 운영하면서 내담자들을 만났을 때, 도화살이 있는 남성의 사주를 보고 여자와 술을 지나치게 가까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 환자를 주로 돌보는 산부인과 의사였습니다. 요즘 도화살은 대중적인 인기가 꼭 필요한 연예인, 혹은 정치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리한 팔자일 것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사주를 또 다른 예로 들어 볼까요? 김구 선생의 사주는 통상 배부르고 등 따뜻한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속세의 부귀에 관심이 없는, 이른바 '거지 팔자'라 불리는 사주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김구 선생은 오갈 데 없이 거리에 나앉는 삶이 아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3. AI, 미래를 점쳐줘!


잡다한 Ai 연구소는 김 교수 도움을 받아 각자 타고난 음양오행을 실제로 분석해 본 뒤, 챗GPT를 이용한 사주풀이와 비교해 봤습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기본 음양오행 분석 단계에서부터 오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음양오행은 해석의 영역이 아닙니다. 타고난 생년월일, 생시를 만세력을 바탕으로 분석해서 일정한 결론을 내는 방식이죠. 그런데 챗GPT는 같은 생년월일과 생시를 입력했는데도 질문을 바꿀 때마다 서로 다른 분석 결과를 내놨습니다.


김 교수는 "AI 사주풀이가 부정확한 이유는, 구시대의 해석과 사례들을 단순히 재조합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챗GPT 같은 언어모델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읽어내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각종 역서와 무속 자료, 심지어 사이비적 해석까지 뒤섞여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또, 시대착오적인 해석을 그대로 반복하는 일부 점성술사들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상담자의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고대의 논리만 적용한다면, 그것은 상담이 아니라 왜곡된 주술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접근은 오히려 내담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고가의 부적이나 굿을 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처럼 치명적인 위험성과 오류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빠져드는 이유는 자신의 소위 '약한 고리'를 파고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 교수는 "신당에 들어서는 순간, 사이비 무속인이라고 하더라도 '안 좋은 일 있어서 왔구먼!'이라고 소리치면 누구나 흠칫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점을 보려는 이들 중 대다수는 불안과 근심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말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 기우는 것이지요.


김 교수는 "근심이 있거나, 벼랑 끝에 내몰린 상태에서 여러 문제를 떠안은 사람들의 사례만으로 데이터를 쌓으면, 해석이 편향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운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실패와 고통뿐 아니라 평온과 행복의 사례까지 함께 수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AI 사주풀이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단순히 고대 데이터와 역서에 기반한 기존의 해석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피드백을 함께 학습시켜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였습니다.


잡다한 Ai 연구소와도 만났었던, 청예 작가의 대표작 <라스트 젤리 샷>에는 사람보다 더욱 뛰어난 지능을 가진 로봇과 인간 무속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 무속인은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신앙과 무속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는 로봇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너의 지식을 한 트럭으로 쏟아부어도 인간의 믿음을 초월하지 못하지. 논리라는 건, 결국 마음이 존재하는 이상 절대로 완벽해질 수 없다.” 청예, <라스트 젤리 샷>

타로점이든, 사주 팔자든, 미래를 점쳐보고 싶은 마음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아득하게 먼 훗날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실 믿음이었을 겁니다. 언젠가 챗GPT의 능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발전해서, 수많은 통계와 사례를 바탕으로 지금보다 훨씬 정확하게 사주팔자 풀이를 한다고 해도, 인간 점성술사가 내담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영역까지 넘보기는 쉽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운명과 팔자라는 거국적인 말 앞에서도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운명(運命)'은 '움직일 운(運)'과 '목숨 명(命)'을 합친 말인데요. 즉,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는 뜻을 품고 있는 셈입니다. 김 교수는 "사람이 타고난 큰 줄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줄기를 어떤 방향으로 꽃 피울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라고 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성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상대방과 나의 궁합이 얼마나 서로 잘 맞는지는 기본적으로 음양오행상 서로가 부족한 지점을 얼마나 채워줄 수 있는 지에서 출발하겠지요. 하지만 김 교수는 "가장 바람직한 사랑은 각자가 타고난 사주팔자를 충분히 살아가고 누릴 수 있도록 서로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저 사람과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맞는가'가 아니라, 상대방이 타고난 장점을 내가 얼마나 잘 살려줄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가진 장점이 상대방의 도움으로 얼마나 잘 빛날 수 있는지입니다. 운명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갈래길을 마주하겠지요. 여기에서 어느 길로 걸어갈지는 결국 AI도, 전문가도, 다른 사람도 아닌 스스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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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Job-多)한 Ai회원들이 김동완 겸임교수와 함께 기념 촬영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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