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연구모임

[리치리치(Reach-Rich)] '이상동기 범죄' 언론 보도와 트라우마

작성일 25.08.08

본문

언론인 트라우마 연구 모임인 리치리치(Reach-Rich)는 지난 7월 29일, 조은경 동국대학교 법심리연구소장(경찰사법대학 법심리학 교수)와 함께 '이상동기 범죄'의 학술적 개념과 이를 다루는 언론 보도 관련 연구, 바람직한 언론 보도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연구모임에서 제공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사전에 미리 읽어볼 서적으로 <두려움의 과학(아라시 자반바크트)> 추천. 우리 뇌 속 '두려움'이란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두려움'과 '불안'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두려움'을 내적으로 다스리고 다른 감정으로 치환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내용들을 참고할 수 있었음.


참고 논문으로 <이상동기 범죄의 최근 실태 및 하위유형 분류(2024)>, <범죄용어 사용에 따른 기사보도 프레임(2025)>, <한국에서 '묻지마 범죄'의 개념적 실체에 관한 소고(2022)>, <범죄 특성에 따른 이상동기 범죄 원인예측_정신질환을 중심으로(2024)> 추천. 


언론계 종사자인 리치리치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법심리학의 한 분야인 범죄심리학의 수많은 범죄 중에서도 최근 “이해할 수 없는 동기”, 혹은 “뚜렷한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이상동기 범죄'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나 통계가 없는 실정이어서, 이런 범죄 사건이 발생할 시 어떻게 보도하는 게 좋을지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문제 인식을 강의 전에 공유함. 이러한 니즈를 바탕으로 조은경 교수가 다양한 관련 연구를 소개하고, 리치리치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강의가 진행됨.


최근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AI가 직접 이들을 면담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는 소식도 접할 수 있었음.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상담하면, AI가 이를 분석하고 요약하여 안전조치 및 신고 진행 등 필요한 도움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할 목적이라고 함. 이를 위해 지금까지 축적돼 있는 피해자 진술 분석과 데이터를 비식별화, 자동화하는 연구 진행 중. 


598cd323b0c69ce97c6130790512b3e4_1754615276_6982.jpg
<리치리치 회원들이 조은경 교수의 강의를 듣고있다> 


조은경 교수의 강의는 크게 세 가지 맥락으로 구분되었음. 

  1) 묻지마/이상동기 범죄가 실제로 무엇인가?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가?

  2) 범죄나 남을 해치는 행동의 기저에 있는 '두려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3) '묻지마'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언론, 앞으로 어떤 보도가 바람직한가? 


조은경 교수> 

이해할 수 없는 범죄 사건이 벌어진 경우, 특히 잔혹성이 크게 부각되고 대대적으로 보도가 된 경우, 언론에서는 가해자가 사이코패스냐 아니냐, 사이코패스 테스트 점수가 몇 점이냐, 이런 것들에 가장 관심을 가질 때가 많다. 그러나 실제 현업에서 살펴보면, 매우 끔찍한 형태의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사이코패스가 아닌 범죄자도 많다. 또, 범죄자의 어린 시절이나, 생애 기록들이 잘 확보되지 않았을 경우 사이코패스 테스트는 점수를 매기기가 힘든 시스템이다. '판정불능'이라고 나올 경우 그대로 이를 인정해야 하는데, 언론에서 계속해서 사이코패스인지 아닌 지에만 관심을 보이게 되면 사건의 본질이 흐려질 수도 있다.

 

'신림동 흉기 난동' 살인범, 조선을 내가 직접 면담하고 분석했다.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저지른 범죄였는데, 당시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접촉이 증대되고, 조선이란 사람은 특별한 직업 없이 집에서 하릴없이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 검색만 하며 외부와 단절된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본인이 단 악플로 인해 고소를 당하게 되었다. 조선이 어렸을 적 소년원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것이 끔찍한 악몽 같은 기억이었기 때문에 다시 교도소에 가게 되는 것을 엄청나게 두려워했다. 우리로선 이해되지 않지만, 그런 벼랑 끝 상황에서 “누구를 죽여야겠다” 판단을 내리고, 한참 흉기를 휘두르고 나면 망연자실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을 살해한 교사 명재완 같은 경우에는, 일시적 장애가 아니라 지속적 장애를 겪은 사람이다. 거기에 가정불화 등 촉발 요인이 더해진 경우이기 때문에, 치료로 인한 예방 가능성이 있다. 조선 같은 경우, 경계선 지능이 의심되는 사람이고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했다. 모욕죄로 인한 처벌의 두려움은 비현실적 망상이지만 자신한테는 현실이었다. 극심한 불안감을 완화시키려고 고모집에 갔으나 고령의 할머니밖에 없어서 대화하지 못했고, 고모집에서 나오자마자 가게에서 훔친 칼로 행인들에게 휘두른 것이다. 칼을 훔쳐 나오면서 “아무나 걸리기나 해봐라” 이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상동기 범죄라 해서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같지 않은' 사람일 뿐이지, 본인 나름대로 행동의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있다. 공격성과 불안, 두려움이란 감정은 알고 보면 그 뿌리가 같다.

 

Q. 리치리치: 이상동기 범죄라고 하면, 반드시 살인 범죄를 가리키는 것인가?


조은경 교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참고 논문 속 분석에서 보이듯이 오히려 법원에서 판결한 '이상동기' 범죄 사례 중 가장 높은 37%는 상해, 29%는 폭행이다. 우리의 예상과 상당히 다르지 않은가? 물론 수사기관에서 정의내리는 것과 법원에서 바라보는 이상동기 범죄의 개념이 다를 수는 있다.


Q. 리치리치: 이상동기 범죄라는 용어가 공식 용어인가?


조은경 교수> 경찰청에서는 '동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으로 '이상동기 범죄'를 공식 용어로 정했다. 그러나 형사정책연구원에서는 '무차별 범죄'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통계를 잡으려면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앞서 형사정책연구원에서 '무동기 범죄'라는 용어를 썼을 때는 정신적 문제가 있거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경우 등을 유형화했다. 사건이 동질적이어야 표집이 가능한데, 대상이 객체가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질 경우, 비전형성이 두드러진다.


가장 최신 논문을 보면, 이상동기 범죄자를 범죄반복형(49.3%), 충동범죄형(40.0%),사회(분노) 투사형(12.7%)로 나눴는데 이 유형에 따라 흉기를 사용할 확률 등의 성향이 다르다. 어느 한 유형에서 시작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통계로, 날씨가 더우면 몸에 맞는 공(빈볼)의 빈도가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다. 남을 해치는 행동을 할 때 반드시 의도적인 기제가 아닐 수도 있다. 좌절을 초래한 원인이 아닌, 다른 대상에게 공격행동을 하는 '전위된 공격행동'이라는 개념이 있다. 1차 좌절 경험에는 반응하지 않았다가 이후 2차 사건이 상대적으로 경미한데도 불구하고 공격 반응이 튀어나오 게 된다. 

 

범죄자는 비합리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는 '왜곡된 인식'이 특징이다. 조두순을 직접 담당한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조두순의 경우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전두엽이 다 망가졌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재교육 등을 통해 개선되기가 어렵다고 한다. 당뇨 등 지병도 악영향을 준다. 다만 이렇게 전두엽이 망가진 것이 나영이 사건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분석이 어렵다. 향후 우려되는 것은, 스토킹 범죄다. 앞으로 스토킹 범죄에서 이상동기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교제 폭력이라는 것이 거부당했다는 좌절감, 인식의 왜곡과 연결된다. '맥락화', 맥락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대개 상황의 맥락화가 잘 안되는 사람들이 반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경향을 보인다.

 

이상동기 범죄 보도의 경우, 일반 범죄와 달리 수법이 잔인한 경우가 많고, 범죄 대상이 불명확해 사람들에게 더 큰 불안감을 주게 된다. 언론의 보도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기능이 있으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그대로 전달될 경우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주고 사회적 공포감,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다. 모방 범죄와 같은 역기능을 초래할 수도 있다. 언론인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고, 특히 커뮤니티 약화, 가족의 기능 축소 등을 주의 깊게 봐주었으면 한다.



주무관청 : 공공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