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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경안연] 트럼피즘과 글로벌 동반 성장

2025.04.01

본문

2025년 연구모임으로 선정된 '트럼피즘과 경제안보 연구회(트경안연)'가 3월 25일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임에서 진행된 강의 내용을 공유합니다.(트경안연 제공)


□ 주제: 트럼피즘과 글로벌 동반 성장

□ 강사: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前국무총리, 서울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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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동반성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한국 외교의 향후 진로

1. 문제 제기

오늘날 한국경제를 이처럼 크게 성장시킨 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교육 및 인적자원 투자의 강조였다. 주요 천연자원도 축적된 자본도 없는 한국으로서는 경제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노동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교육에 국가 역량을 집중했고 그 결과 국민의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그러나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불러온 경제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저성장이 고착되어 왔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보면 1960~1970년대에는 10%를 넘었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8%대였으나, 김영삼 정부 이후 장기 성장률(10년 이동평균)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6%(김영삼)→5%(김대중)→4%(노무현)→3%(이명박)→2%(박근혜)로 떨어져 왔다. 산업화 시대의 모방형 인재 교육은 창조형 인적자원 축적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공동체 정신은 약화되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도 희미해졌다. 또한, 소득분배를 보면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5%를, 그리고 상위 10%가 47%를 가져간다. 그뿐만 아니라 대기업, 특히 4대 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다시 말해서 경제력 집중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크다.


기업의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와 성장의 부진을 가져왔다. 수출 대기업의 훌륭한 성과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난 4반세기 동안 급속히 진행된 세계 경제의 개방화와 정보화, 그리고 한국 사회 특유의 갑을 관계 문화로 인해 국내 산업 간 연관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 결과 수출과 내수 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고용과 소득을 만들어내는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크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구조화된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근본적 해결에는 많은 시간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한국경제라는 배에 동승한 현실에서 더 이상 실기하면 모두가 공멸이다.


2. 동반성장이란 무엇인가?

‘동반성장(Shared Growth)’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는 사회 철학을 말한다. 인류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 집단, 국가 사이를 ‘동반자’ 관계로 조성하여,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도록 운영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동반성장은 어느 일방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승자 독식의 경쟁’을 배제하고, 참여자 모두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는 ‘협력적 경쟁’을 추구한다. 동반성장에서 말하는 ‘함께 나누자’라는 것은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에게 주자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경제 전체의 파이는 크게 하되 분배의 규칙은 조금 바꾸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GDP가 100이고 부자에게 80, 그리고 빈자에게 20이 분배되었다고 하자. 동반성장이 추구하는 것은 GDP를 100에서 예를 들면 110으로 키우되, 분배는 이전의 ‘88 대 22’에서 ‘85 대 25’ 또는 ‘82 대 28’ 등으로 나누자는 것이다. 그렇게 부자·빈자 모두 다 성장의 과실을 얻게 하되 빈자의 증분(增分)이 부자의 증분보다 조금 더 크게 하자는 것이다. 동반성장은 그 개념이 매우 넓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동반성장뿐 아니라, 빈부 간, 도농 간, 지역 간, 수도권·비수도권 간, 남녀 간, 국가 간 동반성장 등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은 남북한 간 동반성장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고, 서울대학교가 입시제도로 채택하는 지역 균형선발제는 지역 간 동반성장을 위한 고려다. FTA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국가 간 동반성장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 동반성장의 원리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계적인 완전 평등은 가능하지도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사람도 있고, 대기업과 함께 중소기업도 있다. 성장하는 산업이 있으면 사양산업도 있기 마련이다. 모두를 똑같게 만들 수는 없다. 문제는 한 분야의 성장 효과가 그 분야에만 고이지 않고 다른 분야로 퍼지도록 하는 것이다. 경제는 순환이다.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각 부문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선순환하도록 하는 것이 동반성장의 요체다.


동반성장은 낙수효과와 분수효과의 선순환적 결합으로 이뤄진다.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에서는 낙수효과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장 만능주의를 맹신한 결과 오히려 공정한 시장경쟁을 파괴하고 기득권을 고착시키면서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는 폐단을 낳았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분수효과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반대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개인의 경제활동 의지를 훼손하고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면서 복지정책을 통한 사후적 분배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문제가 없지 않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 중 어느 하나의 경로(track)만으로는 동반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를 결합하여 선순환 효과를 낳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개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바꾸고, 우리 사회의 법제도와 관행을 혁신해야 하는 지난(至難)한 과제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를 결합하는 동반성장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4.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한 동반성장 단기 3정책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기 침체는 경기순환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저성장과 양극화란 기저 위에, 코로나19 사태, 미・중 대립, 4차 산업혁명, 연준의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경제와 사회, 교육 등 많은 분야에서 양극화가 더욱 가속될 것이다. 물론 환율이 올라가면서 수출 대기업은 잠시 호황을 누릴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전 산업, 전 기업에 걸쳐 지속해서 경쟁력이 약화하는 상황은 단계별로 세밀한 전략을 요구한다. 향후 한국경제 활성화를 위한 체력 강화와 토대 구축에 필요한 정책은 빠르게 추진하고, 한국 경제 질서를 재구축하는 정책은 여유를 두고 천천히, 그러나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현재와 같은 저성장과 잠재 성장력이 낮아지는 추세가 굳어지는 것을 막고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첫걸음은 동반성장 단기 3정책의 실천이다.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정부 사업의 중소기업 직접 발주가 그것이다. 이 단기 3정책은 한국경제의 체력 강화는 물론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는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호조를 보여 왔다. 반면 소비와 설비투자는 얼어붙은 지 오래되었다. 가계소득은 기업소득에 비해 증가율이 1/3밖에 안 된다. 또한 가계는 2021년 6월 말 기준 1,900조 원의 빚을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에 소비가 늘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비투자는 지난 20여 년간 부진을 거듭했다. 대기업도 그렇고 중소기업도 그렇다. 대기업은 천문학적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는 부진하다. 그 이유는 대기업이 IMF 구제금융 이후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태를 보이는 데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투자할 대상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기업 정도면 첨단·핵심 기술이 있어야 투자한다. 그러나 한국은 첨단·핵심 기술이 부족하다. 연구 및 개발(R&D) 지출이 절대적으로 세계 5위이고 GDP 규모를 고려하면 세계 1, 2위다. 그런데도 첨단·핵심 기술이 충분치 않은 이유는 R&D 지출이 주로 개발(D)에 치중해있고 (본격적인) 연구(R)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알량한 R도 본격적인 연구(Research)라기보다는 남의 아이디어 다듬기(Refinement)에 불과하다고 한국경제를 폄하하는 관찰자도 많다. 이에 대한 대책은 개발에서 연구로(D→R), 남의 아이디어 다듬기(Refinement)에서 본격적인 연구(Research)로의 방향 전환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저성장의 문제는 당장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중소기업은 어떤가. 그들은 투자할 데는 많은데 자금이 없다. IMF 구제금융 이후 가계로 흘러가지 않은 기업 소득은 주로 대기업 것이고, 중소기업은 수익률이 대기업의 1/3밖에 안 된다. 그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행위, 특히 납품가 후려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이 돈은 많은데 투자를 안 할 바에야 대기업으로 흐를 돈을 합법적으로 중소기업에 흐르도록 유도하면 투자가 늘어나 (중소기업의) 투자증가 → 생산증가 → 소득증가 → 소비증가 → 경기침체 완화 → 성장의 회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연결고리의 가운데 중소기업이 자리 잡고 있으므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괴리도 줄일 수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도 많이 완화할 수 있다. 한국의 기업 가운데 99% 이상이 중소기업이고, 또한 고용의 88% 이상을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지난 10년 동안 동반성장 단기 3정책을 계속 주장해 온 이유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밖’에서 왔지만, 한국경제 위기는 훨씬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내부 생태계의 위기다. 산업, 금융, 노동 등 경제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이 무너지면서 국민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끊어진 것이다. 동반성장은 지속 가능한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복원하여 국민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이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다만,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초과)이익공유제, 적합업종 선정, 정부의 중소기업 위주 발주 등의 동반성장 3대 시책을 통해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5. 경제 불평등 완화와 지속 성장을 위한 중기 정책

중·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가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 불공정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과도한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둘째, 지속 성장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성장 없이 정체되는 사회는 퇴보하여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실질적 자유까지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실질적인 자유 확대를 위해서도 지속 성장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 불평등 완화와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50년간 지속한 수출 대기업에 편향된 경제정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도 성장의 축으로 자리 잡아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동반성장 경제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6. 동반성장 국가를 향한 장기 과제

1) 사회 혁신

우리 사회가 양극화의 나락으로 빠져든 이유는 단순히 경제성장 전략의 문제만은 아니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질서 자체가 서서히 붕괴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맨 밑바닥에 불의와 부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보며 국민이 느꼈던 실망과 좌절과 분노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정부, 상식이 먹혀들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 밑바닥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부패 구조 때문이다. 돈 먹는 공무원, 돈 주는 기업인, 이권을 추구하는 정치, 기득권에 안주하는 언론계와 학계, 정의에 눈 감은 사법부, 도그마에 빠진 종교계, 그리고 영달 추구와 경쟁의 각축장으로 변한 교육계 등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러한 부정과 부패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이 구조가 ‘더불어 살기’보다는 ‘끼리끼리 살기’를 추구하고, 약자를 위해 정의를 세우기보다는 강한 자를 위해 불의에 눈 감게 한다. 한때 우리 사회의 공감대였던 ‘보다 나은 미래, 더 잘 사는 사회’는 사라지고, ‘그들만의 잔치, 비상구가 없는 사회’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부정과 부패의 구조가 일소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칠 수 있다.


2) 교육 혁신

과거 한국경제 고도성장의 주역은 과감한 투자로 대량 육성한 산업화 맞춤형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미래를 이끌 핵심 역량은 유연하고 창의적인 인재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핵심 인재들은 어떻게 육성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우수한 교육에 있다. 먼저 급변하는 세계에서 스트레스가 과중한 학생들의 심신을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심신을 단련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교육은 지덕체(智德體)에서 체덕지(體德智)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새로운 세대에게 창의력을 함양시켜야 한다. 다르게, 그리고 새롭게 생각하는 능력을 일컫는 창의력은 특히 연구개발 부문에 필요한 핵심적인 능력이다. 연구개발은 최첨단 투자 사업의 설계 및 실행에 필수적이지 않은가?

셋째, 우수한 교육이란 또한 낯선 상황이나 위기에 적응하는 능력과 역경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춘 미래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지도자들이 일찍부터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감과 융통성을 겸비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자신감과 융통성이야말로 급변하는 세계 환경 속에서 이들이 효율적으로 성공에 도달하도록 해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 그리고 토론이 필요하다.


7. 사회 작동원리로서의 동반성장

역사적으로 사회 작동원리는 구성원들의 행동을 비롯하여 정책·제도·법의 내용에 영향을 미쳐왔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그러나 두 가지(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공정한 관찰자에 의한 조정과 통제) 원리가 하나의 토대로 기능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원리는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애덤 스미스 시대의 고전적 자본주의는 개인의 공정한 관찰자 개념을 국가로 확대한 케인즈적 자본주의를 거쳐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을 극대화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변화해 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았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은 것은 애덤 스미스가 정립한 자본주의의 두 가지 사회 작동원리 가운데 ‘공정한 관찰자에 의한 개인 이기심의 조정과 통제’를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분명 자유와 경쟁은 특권을 가진 소수만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했던 중상주의 경제 질서에서 모두가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가져오는 촉발제가 되었다. 따라서 자유와 경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자양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공정한 관찰자’의 덕목을 상실하고 ‘자유로운 경쟁’만이 남은 인간은 오직 이기적 욕망 충족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공동체 사회는 무한 경쟁의 각축장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는 사회적 정의가 자리 잡을 여지가 없다. 능력주의와 실력주의란 명분으로 적자생존의 법칙이 인간 사회에 관철되면서 오직 자본의 이윤추구만이 인간의 삶과 사회를 결정할 뿐이다. 그 결과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시대적 요청이 바로 동반성장이다. 동반성장은 신자유주의와 달리 개개인을 상호작용의 관계를 갖는 공동체 사회 구성원으로 본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설정한다. 동반자 관계란 서로가 서로에게 대등한 관계로 함께 살아가는 관계다. 그래서 개인이 구현할 수 있는 행복과 자유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과 자유, 그리고 공동체 사회에 구현된 행복과 자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즉, 동반성장은 아탈리(J. Attali)가 말한 이타적 이기주의를 기반으로,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 나아가 공동체 사회의 행복을 함께 추구한다. 그것이 함께 성장하고 더불어 나누는 가치다.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사회제도·법·정책이 만들어지고 구현될 때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가 서로 행복을 증진하는 동반성장 사회로 갈 것이다.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라는 것으로 공동체 사회 구성원인 정부, 기업, 개인의 행동 기준인 동시에 지속 가능한 공동체 사회의 가치이며, 사회의 작동원리다.


8. 동반성장, CSR, GCC, CSV 그리고 ESG

조세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시장에서의 여러 가지 의미의 불균형은 역동성, 효율성 그리고 생산성을 마비시키고, 파멸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해 결국 사회 전체를 침몰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현재의 불균형 상태를 균형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는 노력을 전면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여기에는 기업의 역할이 매우 크다.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지 말고 사회 발전을 견인하는 건강한 기업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사실 기업 입장에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도 버거운데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이윤의 추구가 기업의 목적이며 본질이다. 자유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이윤 추구는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자본주의 국가들인 구미(歐美)에서도 기업이 주도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필요조건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ESG’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측정하는 비재무적 지표이다. 본래 ‘ESG(환경·사회·지배 구조, Environment·Social·Governance)’는 2006년 UN이 ‘PRI(책임 투자 원칙,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를 발표하면서 주목된 투자 원칙이었다. ‘ESG’는 환경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적으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왜냐하면,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 위기가 촉발되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자들은 각 기업에게 지속가능경영을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기업의 투명한 경영 체제를 강조하는 ‘ESG’가 재조명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은 2011년 마이클 포터와 마크 크레이머가 제시한 ‘CSV(공유가치 창출, Creating Shared Value)’로 진화한다. ‘CSV’는 기업 활동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수익을 추구하여 장기적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기업성장전략이다. ‘CSR’이 기업 이익의 일부를 사후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면, ‘CSV’는 시장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다 알기 쉽게 파이에 비유한다면, ‘CSR’이 잉여자본을 나눠주는 ‘남는 파이를 나누는’ 방식이라면, ‘CSV’는 기업이 사업 목표를 세우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공익과 기업 이익의 균형을 위해 ‘파이를 키우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남의 것을 빼앗아 나눠주자’가 아니라, ‘다 함께 파이를 키워서 나누자’는 동반성장의 철학이 담겨 있다. 나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CSV’, 즉 동반성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9. 결어

나는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동반성장 정신’이 21세기형 ‘공정한 관찰자’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상생과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케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적 약자의 불안을 극복하고 경제를 재도약시킬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이다. 지속적인 발전은 부단한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경제적 약자도 혁신에 동참할 튼튼한 체력을 갖출 때 비로소 모두가 함께 멀리까지 달릴 수 있다. 동반성장은 장기 지속의 발전을 담보할 희망의 원리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상호 공존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동반성장은 영원히 이상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 속에 대기업의 선도적 변화와 중소기업의 자조(自助)가 어우러진 삼위일체가 동반성장의 핵심 동력이다. 무엇보다도 한 나라가 잘 되려면 법률가 학자 그리고 언론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뢰프케(W. Röpke)의 말이다.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많은 나라에서 ‘공정한 관찰자’ 정신으로 기업 간 이익공유를 시행해왔듯이, 우리 기업들도 이익공유 등을 통한 동반성장에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다면 한국이 경제적으로 더 도약하고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도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동반성장은 21세기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시대정신(Zeitgeist)이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서민경제가 파탄 나고, 경제 전체가 붕괴되어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성공하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한국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눌 때 냉전 시대의 유물인 이념 갈등도 저절로 해소되고, 공동선의 가치를 존중하는 진정한 사회 통합도 이룰 수 있다. 동반성장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혀줄 희망의 등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