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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연구모임] 다큐멘터리의 역사와 기원

2023.07.06

본문

'다큐연구모임'(간사: 박희영 CBS 기자)이 지난 6월 25일 모임을 가진 후 정리한 강의 내용을 공유합니다.


□ 주제 : 다큐멘터리의 역사와 기원 / <바시르와 왈츠를> 분석

□ 강사 : CBS 황민아 PD 발제


#1. 다큐멘터리의 출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매우 원초적이어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 나오는 콘텐츠들(일상 기록 브이로그, 인터뷰 콘텐츠, 방송 다큐, 라이브, 보도물, 무대영상 등)과 크게 무관하지 않다. 

유튜브 콘텐츠가 뜰 무렵인 5~6년 전 디지털 콘텐츠가 시작할 때만 해도 뿌리는 다큐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재밌어 하고 사실로 느끼고 감정이입 하는지 근원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 다큐 추구 정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러시아 영화 감독 지가 베르토프가 주창하는 이론인 '키노 아이'와 '키노 프라우다'. 1920년대 교육용 뉴스 영화 제작을 했다. 당시 러시아 혁명과 마르크스 혁명 등이 뜨거웠는데, 이때 프로파간다(선전물)로서 기능했다. 소비에트 공동체 건설을 위한 도구 중 하나로 사용됐다. 이데올로기가 감독의 영상에 영향 미쳤던 시대. 날 것들의 조합으로 인간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볼 수 있게 하고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했다. 온전한 러시아 공동체 모습. 


- 다큐 형식적인 부분, 관점에 따라 크게 두 축. 다이렉트 시네마, 시네마 베리테.


- 다큐적 진실에 관하여: 최근에는 '진실'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다큐 초기에만 해도 진실이란 무엇인가, 세계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가 다큐 제작자들의 큰 고민이었다. 당시에는 참된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다큐적 진실은 무엇이고 무엇이 다큐적인 걸 가능하게 하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딱 정의 내릴 수 없는 탈진실 시대. 기술 발전에 따라 혼합되고 있다. 재정립 필요하지만, 역사적으로 진실을 추구해온 것은 사실이다. 


- 다큐적인 걸 가능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제작 주체(누가 만드나), 목적(의도), 무엇을 카메라에 담는가(대상). 무엇에 관심 있으며 어떤 의도로 다큐를 제작하는가. 토론거리, 삶의 한 단면을 탐구, 윤리적인 기록하는 데 필요한 일, 진실과 갈등 드러내는 것, 관객 마음과 정서 속으로 끌어들이는 사람. 현실에서 발견한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기록함으로써 알리고자 하는 열정 가진 사람 등이 다큐의 요소가 될 수 있다.


- 다큐의 의도와 객관성

다큐 목소리는 어떤 주장이나 시각을 표현하는 특정한 방법. 한 영화의 논리나 주장, 관점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되는가에 대한 질문.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 조직하고 재구성하는 방식. 제작자 개입 없어 보이는 영상의 나열이라고 하더라도 이조차 의도가 들어간다. 제작자의 장면 선택, 어떻게 붙이고, 어떤 샷을 잡았고 등 최소한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객관적인 것은 없다. 객관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조차 의도됐다. 만드는 사람의 관점 또렷이 하는 것. 제작자의 목소리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함. 선택의 문제, 어떤 대화를 통해 어떻게 인터뷰를 끌어갈 것인가 등 전 과정 걸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 다큐적 논리성

수사학과 관련.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픽션과 어떤 차이. 캐릭터와 중심 내러티브 등, 개연성 주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다면. 다큐는 수사학을 구사. 말하고자 하는 중심 논리나 논의, 주제를 중심으로 조직. 결국 설득이 목적. 고대 수사학과 밀접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발전한 언어기법. 효과적 설득 위한 문체 언어 연구 학문. 상대를 언어를 통해 설득하기 위한 방식. 다큐도 이런 방식으로 재구성. 현실세계에서 사실성 획득, 내가 생각하는 진실이 너도 생각하는 진실일 수 있게 만들거나 설득함. 


#2. 다큐의 주요 개념들.

픽션은 A world/ 다큐는 The world. 사진적 기록 영상들이 다큐라고 할 수 없어. 기록물은 기록물. 해석이나 관점 통해 재구성, 조립된 게 아니라면 다큐라 볼 수 없음. 재현을 해야 됨. 


다큐는 3단계 재현을 통해 세계에 참여

1) 보여주기. 현실세계 보여주면서

2) 관점 제시하기. 제작자의 관점, 해석 제시. 

3) 설득하기. 관객 설득.


누가 어디에 앉는 것도 연출의 하나가 될 수 있다.


- 몽타주: 편집. 촬영분을 취사 선택해서 편집해서 재구성한다는 의미. 

- 주관적 사실: 사실 그 자체는 진실이 될 수 없으며 사실은 진실 위한 벽돌 같은 존재. 가치 중립을 주장할 수 있을까? 가치 중립 사실이란 현실 자체로만 존재. 개인이 획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 아니라고 주장. 개인의 지각으로 판단 못해. 객관적 사실 그 자체 이야기는 불가능. 현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제작자가 존재. 카메라 위치나 다큐는 사실에 기초해 창작하고자 하는 개인의 주관적 가치와 세계관에 기초한 '진실'을 제안하기 위한 탐구.


#3. 다큐의 역사

다큐의 역사를 이끌어온 다양한 사람들이 있음.


- 로버트 플레허티 '북극의 나누크'. 나누크 민족의 삶을 민족지적 방식으로 다룸. 그냥 기록한 게 아니라 연출함. 에스키모가 당시 사용하지 않은 사냥기법을 좀 연출해 달라고 해서 스토리 등을 생각함. 스토리를 위해 연출하고 적절하게 구성함. 에스키모의 생활 감상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생존 위해 투쟁하는 인간'이라는 주제의식도 담아. 사실이란 소재 통해 사회적 인과관계를 암시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기 시작.


- 지가 베르토프. 러시아 문맹률 높아 민중 계몽시킬 도구 필요해 적합한 매체로 영화 선택. 선전물로서 사람들 매혹 위해 '몽타주', 화면 빠르게 했다가 정지했다가 등 다양한 다큐 기법 개발. 마르크스 이론에 시각적 형태 부여함. 프로파간다 현재는 빨갱이 등 부정적 의미 있지만, 당시에는 사회상을 위해 대중 태도에 영향 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음. 영화가 농민, 공무원, 문맹자 등 최소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 그러나 레닌 이후 스탈린 시절에 다큐는 오히려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 존 그리어슨. 다큐는 생활의 실제 기록 이상의 무엇. 사회적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 단순 재현 아니라 누구 하나 망치로 깨부실 만큼의 영향력 있어야 한다고. 다큐를 제도화시킨 인물로 인정 받음. 제작단도 꾸리고, 연구생들 발굴, 교육. 움직이는 것을 기록한 것에 불과했던 활동사진이 설득이라는 목적으로 다큐로 진보. 영상물 배열, 재구성, 숏의 구성, 카메라 앵글 움직임, 편집 화법 등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4. 다큐의 양식 (누군가에게 영향 끼친다면 어떻게 영향 끼칠 것인가. 양식.)


- 시적 양식: 실험 영화, 사적인 영화, 아방가르드.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장면의 배치.


- 설명적 양식: 요즘 모든 영상들의 대부분 양식. 다큐 계보로 30~40년대 영국 다큐에서 출발. 1930년경 영화에서 유성영화가 되며 소리라는 게 다큐에서도 적용. 해설 가능하고 자막 들어가고. 영상에 해설 덧붙이니까 제 3인칭에서 설명. 당시 영국의 다큐는 대중 교육 목표.


- 관찰자적 양식: 설명적 다큐와 대척점에 있어. 제작자 판단 해석을 직접적으로 관철시키는게 설명적이라면, 관찰자적 양식은 개입하지 않는 양식. 

예) 프레드릭 와이즈만. '티티컷 폴리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2017). 티티컷 폴리스, 정신병원에 있는 죄수, 교도관을 그대로. 60년대 정신장애 가진 환자 모습 적나라하게 찍음. 개입하지 않고 카메라 있는지 없는지 모른 채. 이것 자체가 가능한가 하는 모순이 존재한다.


- 참여적 양식: 제작자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존재 알림. 사람들은 어떤 시점에서 만들어져 가는지 솔직하게 알려줌. 제작자 본인조차도 제작 과정에서 관점 바뀔 수 있음. 관객들은 이것의 공개를 통해 오히려 진실성 가진다고 여김.

예) 슬픔과 동정(1970)'. 나치 치하 프랑스, 증언자들을 인터뷰. 제작자 개입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상황 만들고 인간 본성 끌어냄. 대상이 자아 성찰하게 하고, 제작자와 상호작용, 질문에 답하면서 생각. 자기 자신 되돌아보는 것조차 양식이 됨. 다만 단점도 있음. 


- 성찰적 양식: 다큐의 리얼리티에 대한 믿음 끊임없이 의심 성찰. 다큐의 양식 자체에 대한 성찰. '성은 베트, 이름은 남'(1989). 연기 혹은 픽션 연출임이 밝혀질 때 재현 수단 자체에 대한 의심. 


- 포스트 다큐: 지금의 양식. 픽션과 논픽션 경계 모호하게 함. 재현이란 무엇이고 리얼리티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던지며, 다큐만의 위치와 스펙트럼에 위협. 디지털 핸디캠, 딥페이크 등으로 인해 예전에 비해 영상 쉽게 제작되고, 애니메이션 기술로 애니메이티트 다큐는 과연 다큐일까? 정체성 혼란 있지만 다양한 형식적 시도. 


- 드라마-다큐 혼합형


- 모큐멘터리: 조롱+다큐. 친숙한 다큐 형식 차용해서 관객들에게 허구를 사실로 전달하려고 함. '블레어위치(1999)' 나 '곤지암' 등 페이크 다큐 등장. 공포물에 이런 양식 차용.


-사적 다큐: 요즘 많이 하는 것. 지금 다큐 제작자들이 많이 차용하는 방식. 제작자의 스타일 많이 드러남. 자신의 모습을 미장센 안에 포함시켜. 페미니즘 다큐에서 그 맥 찾을 수 있음. 여성 작가 개인의 번뇌 등 승화시킴. 작가 개입, 작가 응시. 주변으로부터 다큐 만들어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1960년대 페미니즘 운동 슬로건과 맞물림. 접근성 괜찮은 양식. ‘나’에서 출발하는 양식. 카메라 들고 있어서 찍고 있는 것 알지만 사적인 관계에서 여과 없이 감정 드러냄. 


- 애니메이티드 다큐: 99% 애니메이션일 때. '바시르와 왈츠를'. 어머니 아이 포함 3천 명의 무슬림이 이스라엘 군부의 비호와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브라-샤틸라 학살'의 개인적 경험으로 애니메이션 만든 사례. 보통 실사 이미지 자체가 다큐의 리얼리즘을 보장해 준다고 잘못 인지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큐의 사실성은 파트2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관적 사실에 의해 획득 되는 것. 영상 이미지에 시사성을 부여하고 선택을 결정하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아냄으로써 다큐적 역할을 부여하는 제작자로 인해 이미지는 사실성을 확보할 수 있음. 해당 작품에서는 마지막에 몇 분 동안 실사 영상을 보여줌.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피해자의 트라우마 재현한다고 할 때 어떻게 재현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 그림 등으로 할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