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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회] 미-중 패권시대 한국 외교안보 정책변화

202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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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들의 연구모임인 '부용회'가 지난 6월 2일 두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연구모임(간사: 박석호 부산일보 부장)에서 제공한 강의 내용을 공유합니다.


□ 주제 : 미-중 패권시대 한국 외교안보 정책변화와 부산

□ 강사 :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1977년 외교부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36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2013년 2월에 퇴직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2년 이상 북핵 6자 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비핵화 협상의 전면에 나섰고, 이명박 정부에 서는 후반기 2년 반 동안 외교안보수석으로서 외교 정책 외에도 국방·통일 분야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을 보좌할 기회가 있었다. 이념과 비전이 다른 정부에서 요직을 맡아 내 능력 이상으로 국가에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고 특권이었다. 

본인은 직업 외교관들에게는 낯선 특이한 업무를 유난히 많이 맡았다. 그중에서도 공직의 진로와 운명을 결정한 것은 북한, 핵, 그리고 국가 안보와 맺은 숙명적 인연이었다. 이 세 가지 분야에서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나라에 쓸모가 있는 시대를 만났기 때문에 외교·안보 정책의 중심 무대에서 잠시 조역이라도 맡았다.

북한과의 인연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우연히 오스트리아 대사관에 부임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핵 업무를 맡으면서 시작되었다. 1999년부터 2년간 '대북경수로사업기획단'의 국제부장을 맡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경수로 사업에 관여하게 되었다.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북한의 핵 포기 조건으로 함경남도 금호지구에서 진행한 경수로 건설 사업은 북한을 공부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함경도와 평안도의 벽지를 수시로 여행하면서 북한의 속살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는데 같은 민족이 어떤 체제와 지도자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얼마나 판이한 운명을 만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또 북한의 미래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북한이 경수로 공사에 동원한 근로자들의 임금을 5배나 인상해 달라고 요구하자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하여 북한 최초의 노사 분쟁을 해결한 것도 북한 관료 사회의 문화와 생리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2006년 2월부터 2년 넘게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는데 유용한 밑거름이 되었다. 2007년 6자회담에서 '2.13 합의'를 남북 수석대표 간의 직접 협상으로 타결하고 6자회담의 추인을 받는 형식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수석대표들보다 북한과 핵 문제를 다루어 본 경험이 많았던 덕분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수석으로 발탁된 것도 북한과 핵 문제에 대한 경험과 지식 덕분이었던 것 같다. 

안보 분야에서도 나는 다른 공직자들에 비해 공부할 기회가 비교적 많았다. 한국이 처음으로 1996~1997년 임기의 유엔 안보리 이사국에 당선되자 유엔 대표부의 안보리 담당 참사관으로 안보리 논의 안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과 발언문을 건의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안보리가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힘도 동맹도 없는 국가들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과 국가 안보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수석으로서 내가 앞장서서 달성한 성과 가운데 지금 되돌아보아도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일이 있다. 하나는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우리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한 '아덴만 여명작전'을 건의하고 관철해 해적들의 한국 선박 납치를 근절한 것이다. 또 하나는 2012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재임 중에 톰 도닐론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의 직접 담판을 통해 '한미 미사일지침'을 전면 개정해 한국의 미사일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할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2003~2004년간 유엔 미사일 패널의 위원으로서 세계적인 미사일 전문가들과 토론하면서 미사일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세번째가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모든 장사정포 진지를 5분 이내에 파괴할 수 있는 전술지대지미사일(KTSSM) 개발을 결정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수석을 맡은 2년 반 동안 매일 평균 30분 정도는 대통령과 독대해 외교·안보 현안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숙지해야 할 주제에 대해서도 보고를 하고 토론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평생 외국 정부를 상대로 수주 활동을 벌이고 전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온 대통령도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지식이 제한되어 있었다. 앞으로도 이승만 대통령처럼 국제 정세와 외교 ·안보 문제에 해박한 대통령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고 참모들이 단기간에 대통령의 식견과 안목을 넓히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외교·안보 문제에 관심있는 언론인들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게 돼서 감사하다.

우선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핵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를 아무리 강화해도 실패할 경우에는 수만 명 인명 손실 후 응징보복에만 사용 가능할 뿐이어서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당연히 대량응징보복(KMPR)을 통해 북한군 궤멸을 넘어 북한 체제를 종식시켜야 하겠지만,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정권교체가 불가능한 유일한 핵무장 집단이며 2,500만 명 주민보다 이른바 '최고존엄'을 지키는 걸 더 중시한다. 이런 속성을 잘 모르는 미국은 억지 만능주의에 함몰돼 있고 국내에도 과신하는 풍조가 있다.북한 핵개발로 한국은 독자 핵무장을 위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명분과 요건은 충분히 갖췄다. 하지만 독자 핵무장이 이에 따른 정치·경제적 손실을 감내할 만한 안보적 부가가치를 지니느냐가 관건이다.

대부분의 핵보유국은 핵으로 이기는 것보다 재래식 전투에서 지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고 러시아도 아직 문명국가임을 포기하기에는 고민스러운 점이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고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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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이 쓴 책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 표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