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모임활동
[리치리치(Reach-Rich)] 언론인의 트라우마 및 정신건강 이슈 탐구
2024.06.27
본문
언론인 트라우마 연구회 '리치리치(Reach-Rich)'가 지난 6월 17일 모임을 가졌습니다. 연구모임에서 제공한 강의 내용을 공유합니다.
□ 주제 : 언론인의 트라우마 및 정신건강 이슈 탐구
□ 강사 : 반유화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반유화 원장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구 모임 ‘리치리치’에서는 6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반유화 원장을 만났습니다. 강의에 앞서 반 원장의 저서 ‘언니의 상담실’ 혹은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을 읽으면서 2030, 혹은 4050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정신 건강 관련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반 원장은 이날 강의에서 결국 개개인의 행복한 삶과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나’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조언을 전달했습니다. 강의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동료 지원(peer-support)’의 일환으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각자 직접 겪었던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 위로와 공감을 나눴습니다. 아래는 반 원장의 강의와 리치리치 멤버들이 사전에 전달한 질문지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발췌, 정리한 내용입니다.
<나를 잘 돌보자!>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결국 “나를 잘 돌보자!”였다. 반 원장은 ‘나’는 모두에게 있어 최소한 둘로 나눠진다고 했다. 어떠한 행동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 일종의 ‘플레이어’로서의 나,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스스로 바라보고 있는 나. 어느 쪽이든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한평생 데리고 가야 하는 존재.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아닌 나 자신은 나 스스로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고통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타인, 그리고 타인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세상을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때때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일부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상식’의 범위 밖에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나도 다른 사건이나 사고, 혹은 타인의 행동양식을 접했을 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는 충격과 함께 고통을 받는다. 이 같은 충격과 공포는 내가 평소에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양육자, 혹은 롤 모델, 직장의 선배 등이 내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 더욱 커진다. 즉 내가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실망스러운 면모에 더욱 당황하고 화가 나는 법. 그들의 행동양식이 나의 안전에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의 행동양식도 나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데, 그런 실망스러운 모습이 내 스스로에게 발생한다면? 고통은 더욱 커진다. 예컨대 가까운 친구에게 내가 질투심을 느끼거나, 세상에서 나를 가장 소중히 대해주고 아껴준 양육자를 향해 원망하는 마음이 들거나, 양육자에게 스스로가 생각하는 ‘좋은’ 자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에게 부메랑처럼 고통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반 원장은 이 같은 고통의 상황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과, ‘판단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판단’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른바 ‘위시’의 측면과 현재의 내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지금 내 절친한 친구의 취업을 시기하고 있구나.”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판단적’인 사고가 추가된다면, “친구를 시기하다니. 나는 정말 속이 좁고 쪼잔한 인간이구나.”와 같이 내 스스로에게 도덕적인 판결을 내리게 된다. 판단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규범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자 ‘상태’로서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만 판단적 사고를 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 모두는 내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내가 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판단적 사고를 지양하고, ‘판단’에서 출발해 내가 나 스스로를 돌보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어린 시절 나를 양육자가 잘 돌보았던 것처럼, 성인이 된 나는 내 스스로의 양육자가 될 줄 알아야 한다. 나 자신을 잘 달래 주고, 공감해 주고, 나를 둘러싼 외부 세계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나를 잘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움직이게 하고, 어려움이 있을 경우엔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다.
<양육자/연인/가족과 나,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
이 사회를 사는 많은 여성들에게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양육자, 특히 부모와 나의 건강한 분리일지도 모른다. ‘K-장녀’라는 말이 소위 ‘웃픈’ 2030 여성들의 자화상으로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경우, 나 자신이 당신들을 희생해가며 키워준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혹은 양육자의 희생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여성들을 짓누른다. 자식과 건강한 분리를 이루어 내지 못한 양육자들이 그들이 느끼는 심리적 우울감과 공허함, 허무함을 편하다, 친구 같다는 이유로 딸에게 쏟아내는 경우도 많다.
반 원장은 다소 냉정하게 들릴지라도 자녀와 양육자의 건강한 분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런 변화의 출발점은 양육자나 형제자매 등 ‘나’가 아닌 제3자의 변화가 있어야만 나의 현재 상태가 변할 수 있다는 수동적인 생각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양육자 등 제3자에게 우리의 건강한 심리적, 물리적 분리를 위한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만 한 번에 모든 목적을 다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기억해야 실패했을 때도 좌절하지 않는다. 남편, 혹은 연인과의 감정적 분리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통상 여성들은 배우자에게 의존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반 원장이 수년간 상담을 진행해 온 결과 이런 생각은 선입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배우자와 사별하고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잘 살아가는 건 남편보다는 아내들인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어떤 관계에서든 중요한 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래야 건강한 분리도 가능하다. 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반 원장은 최근 자신의 가장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SNS의 경향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는 지금 슬프고 우울한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SNS에 전시하다 보니 내 마음을 스스로 깨닫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되, 판단의 근거를 과거의 나의 경험이나 신체적인 반응에서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반 원장은 어떤 상황이든, 나 자신을 잘 돌보되, 현재 상태가 ‘디폴트’라는 인식을 가져가라고 조언했다. 그래야 어떠한 변화를 추구하고 시도하더라도 “내가 실수하고 실패해도 어차피 기본값이었던 현재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뿐이야!”라는 사고가 가능하다는 뜻. 10번의 시도 중 1번만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풀려도 그건 성공이고, 내가 만약 변화하고자 하는 어떠한 특별한 각성이나 결심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 삶은 실패가 아닌, 현재 상태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라는 방식의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지 말자.
또 하나의 조언은 나를 돌볼 때 ‘최소한의 기준치를 정하라’다. 나를 완벽하게 돌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하다면, 나를 돌보는 일 자체를 자꾸 유예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돌봄의 수준을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최소한 내 스스로 화가 나지 않게 할래’ 등 최소한의 기준선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나를 돌보는 것이 곧 내 자녀를, 부모님을, 가족들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