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모임활동
[리치리치(Reach-Rich)] 언론인의 트라우마 및 정신건강 이슈 탐구
2024.05.02
본문
언론인 트라우마 연구회 '리치리치(Reach-Rich)'가 지난 4월 26일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연구모임에서 제공한 강의 내용을 공유합니다.
□ 주제 : 언론인의 트라우마 및 정신건강 이슈 탐구
□ 강사 : 장민경 영화감독
<리치리치 회원들이 장민경 감독과 기념 촬영한 모습>
연구모임 ‘리치리치’에서는 4월, 네 가지 참사 유가족을 팔로우한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을 보고 장민경 감독을 만나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참사 유가족을 인터뷰했던 취재기를 듣고 언론인이 민감한 취재원을 만나 인터뷰하는 법, 장 감독이 취재를 하며 얻었던 다양한 감정 및 우울감 극복 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래는 리치리치 멤버들과 장 감독의 대화를 발췌,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리: EBS 최현선PD)
리치리치(리치리치의 모든 멤버를 칭함, 이하 리치리치)
언론인 정신건강/트라우마 연구모임 ‘리치리치’에서 공부하는 책 ‘Trauma Reporting(트라우마 리포팅)’에는 유가족 인터뷰 등 예민할 수 있는 취재 현장에서 주의할 점을 소개한다. ‘아이를 잃은 부모 앞에서 나도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그 감정을 잘 안다’는 말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것, 특히 ‘나 역시 어렸을 적 강아지가 죽어서 (아이를 잃은) 당신의 슬픔을 안다’ 등의 실수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이번에 공부한 챕터에서는 유족 인터뷰를 준비할 때, 질문지를 미리 주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대목이 있어 의아한 스터디원들이 있었다. 질문지를 미리 주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미리 조율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리치리치의 PD 멤버인 저는 오히려 일반인을 촬영할 때는 질문지를 그들에게 사전에 주는 것이 금기시돼 있다시피 하다. 방송은 그들의 생생한 첫 반응을 영상으로 담아야 하니까 말이다. 반면, 이야기가 흐름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어서 질문지를 미리 주는 기자분들이 많은데 감독님은 영화를 촬영하며 질문지를 유가족들에게 미리 주었는지 궁금하다.
장민경 감독(이하 장 감독)
드리긴 했었다. 유가족에게 드리는 질문지와 제가 보는 질문지를 따로 만들었다. 질문을 너무 많이 드리면 그분들이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 부분은 주의하려고 했고, 번호 정도는 매겨서 ‘이런저런 것들에 관해서 물어볼 거다’는 의도는 전달했다. 전화로 연락해서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도 드렸다. 일주일 전이나 그렇게 오래전에 보내주진 않고, 2~3일 전에 보내드린다. 어떤 분은 보시고 어떤 분은 안 보시기도 한다. 막상 촬영을 시작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니까 현장에서 조율되는 게 크기도 하다. 이후 촬영을 진행하면서는 질문지 없이 현장에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출연한 분들이 워낙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달랐다.
리치리치
유가족들이 서로 대화하며 ‘그렇죠 그렇죠 알아요’ 등의 맞장구를 치는데, 사실 이런 말은 항상 제가 기자로서 취재원을 만나고 그분의 이야기를 더 잘 듣기 위해 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유족 취재 시에는 나의 행동과 리액션이 실례가 될 수 있어서 전혀 하지 않는다. 유족들은 참사가 다르더라도 똑같이 아픔을 겪어 봤으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그런 반응을 할 수 있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서로에게 위로가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 감독
저 역시 촬영하며 ‘저분들이 서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분들도 서로의 마음이 100% 같진 않을 수 있겠지만, 계속 공감하려는 의지가 고마울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좋았다. 저 역시 인터뷰할 때 어렵다. 하지만 공감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리치리치
취재와 편집에 몰입하다 보면 감독님 스스로도 슬픔, 우울감, 무기력감, 공허함 등에 젖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역시 이런 유의 취재를 할 때 늘 그런 과정을 겪는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감정이 이입되는 경험이 있었는지, 그랬다면 어떻게 거리를 조절하고 일에 몰입했는지가 궁금하다.
장 감독
몰라서 시작했다. 계속 울고.. 당연히 힘들었다. 초반에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곁을 내어주고 위로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 같다. 다 편집하고 돌아와서 다시 앞부분을 편집할 땐 저 역시 괜찮았다. 이분들의 시간의 흐름을 보는 만큼 내 마음속에도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이미지를 찍는 사람에게 다른 이미지를 발견하는 게 다른 힘든 이미지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다. 물론 그 역시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니까 중간중간 동료들이랑 얘기 많이 하는 거 중요하다고 느꼈다.
리치리치
일종의 ‘단절’이 중요한 것 같다. 몰입돼 있던 순간의 감정들에 매몰되면 굉장히 힘들고 내 일상에도 지장을 주니까 말이다. 의도적으로 단절 내지는 벽을 쳐라고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힘든 것을 어떻게 버텨내려고 했나.
장 감독
동료들과 얘기하면서 계속 풀어야 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 건 내가 버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힘들어도 계속 참으려고 했는데, 이후에는 상담도 받으러 가고 지금은 드럼을 치며 풀어나가려고 하고 있다. 삶의 리듬을 찾으러 갔지만 드럼 리듬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웃음) 균형도 잘 잡으면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편집을 끝내고 나서 드럼을 시작했다.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편집 이후에 시작한 것도 좋았다. 여진이 남아있으므로. 출연자에게 완전히 이입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계속 동일시하는 것으로 가게 되면 내 삶의 영역이라는 것이 없어져 버리니까 그것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잘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상담을 받으며 느낀 점이 있다. 고통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볼 때, 순간순간 힘든 이유는 그에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잘은 모르지만, 뇌에 ‘거울 뉴런’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사실 본인의 경험에 기반해서 신경이 작동할 수밖에 없으니까 결국 고통을 경험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본인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사실 본인은 그것을 잘 풀지 못했던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작업을 그걸로 나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마음을 세부적으로 잘 알아주는 게 필요하다. 처음에는 촬영을 진행하며 이렇게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아픔을 호소해도 되는가-라는 죄책감을 갖게 됐는데 사실 나를 잘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고 내가 느끼고 있는 내 상태를 다 인정해 주는 건 되게 중요하다. 내 상태를 알면서 작업을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필요하고 지속 가능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리치리치
‘세월’이라는 단어를 영화 제목에 넣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세월호 참사만 다룬 영화가 아님에도, 사회적으로 민감하다고 여겨지는 이 단어를 사용하신 이유가 있다면?
장 감독
‘세월’이라는 단어는 시간의 의미로 사용했다. 살아왔던 세월이든 살아갈 세월이든..
삶이 계속되려면 시간이 약은 아니더라도 힘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무엇 일지를 담으려고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 커다란 상실을 겪고 나면 삶이 계속된다는 게 잔인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려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리치리치
배은심(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님은 다른 참사 유가족과 성격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를 다른 참사 유가족과 함께 다룬 이유가 있을까?
장 감독
다른 출연자들은 대중적으로 참사 피해자라고 불리는 분들인데, 배은심 님은 그 안에서 조금 독특한 느낌이긴 했다. 영화에도 나오는 부분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유경근 님이 광화문에서 배은심 님을 만났다. 유경근 님이 학생 운동을 하며 배은심 님을 만났을 땐 굉장히 그가 멀게 느껴졌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이 참사 유족이 되고 나서 광화문에서 배은심 님을 마주하니, ‘아.. 한열이 엄마.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참사의 성격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참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 시대에 문제들이 축적돼서 한 번에 폭발한 사건이다. (이한열 열사의) 그 시대에서는 만연하게 국가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고 결국 사람을 죽게 만든 사회였기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예견된 사회적 참사라고 생각했다. 지금 시대에 안전 참사나 안전 재난들로 이어지는 것이 결국 이전에 그렇게 죽게 만든 시스템으로 만든 것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배은심 님도 참사 유가족으로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론 직관적으로는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배은심 님을 넣고 싶었던 것은 ‘연대’에 있다. 그 시대에 여러 참사의 희생자들이 발생했을 때 한 명 한 명 희생자들은 모두 다르다. 모두가 다른 참사이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유가족들이 함께 모이고 연대해서 어떤 공동체적인 생활을 하면서 버텨왔더라. 배은심 님 역시 이소선(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님 등이 손을 내밀어 주고 곁이 되어줬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삶의 이야기를 유경근 님께 해 주셨다. 그에 유경근 님이 영감을 많이 받고 본인이 이후에 다른 유족들을 찾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이 관계성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오랜 세월을 살아왔는데, 세월이 약이냐’라는 질문을 했을 때, 배은심 님은 ‘아니다, 안고 사는 거다’라는 말이 울림을 많이 주시기도 했다.
사실 참사의 종류나 죽음의 위계를 설정하는 게 한국에서 큰 것 같았다. 그런 의문을 제시하고 싶었다. 다른 참사와 민주 항쟁과 붙여놓는 것 자체가 의문을 유발하니까 배은심 님의 내용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리치리치
출연자분들이 모두 유경근 님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나오시긴 했지만, 영화를 촬영한다고 할 때, 나오는 걸 꺼린 분도 있었나? 꼭 넣고 싶은 분이 있었는데 섭외하지 못한 분은 있나?
장 감독
팟캐스트에서 촬영을 맡았을 때도 다른 방식으로 제작하게 되면 그때 따로 다시 연락을 드려 허락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영화에 나온 분들 역시 허락을 한 분들이다. 섭외 전화를 했을 때, 안 하겠다고 하신 분들은 넣지 않았다. 백도라지(백남기 님 딸) 님이나, 춘천 산사태 참사 유족을 담고 싶었는데 담지 못했다. 산사태는 자연재해라 여겨지기 쉬운 데 사실 그것도 인재다. 그분들은 출연하기를 원치 않으셨는데 아마 유가족으로 나왔을 때 어떻게 비칠지 아니까 걱정하신 것 같다.
리치리치
유독 음악 사용을 절제하셨다는 생각이 들고 사용한 부분도 피아노 선율이 무척 깊게 와닿았다. 음악 선곡을 놓고 하신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장 감독
음악 감독과 초반에 논의를 많이 했다. 너무 애조를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었다. 격정적인 것보다 담담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 감독 역시 기본적으로 동행하는 느낌으로 흐를 수 있게 넣자고 했다. 막판에 다른 부분은 한두 번씩 수정을 거쳤는데, 한 부분 다르게 간 부분이 있다. 바다 나오는 장면과 후반부에 유가족이 많이 나오는 장면에 쓴 음악은 같은 음악인데 다르게 편곡을 한 부분이었다. 다른 장면들은 피아노 선율만 흐르게 나오는데, 그 부분만 여러 악기가 나오게 부탁을 드렸다.
음악이 먼저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리치리치
여러 참사, 특히 ‘세월호’는 온라인 공간에서 이미 혐오의 단어가 되어버렸다. 이태원 참사 역시 그렇다. 관련 기사를 쓰면 댓글에 혐오 언어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달리는 지경이다 보니까 피폐해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사람 앞에 있으면 할 수 없는 말인데 온라인 공간에서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아가 기사가 올라가고 나면 피해자들의 전화가 많이 온다. 단순 범죄 기사를 써도, 예를 들면 교통사고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와 유가족이 기사를 내려달라는 연락을 많이 한다. 처음에는 (댓글로) 설득도 많이 나아가 기사가 올라가고 나면 피해자들의 전화가 많이 온다. 단순 범죄 기사를 써도, 예를 들면 교통사고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와 유가족이 기사를 내려달라는 연락을 많이 한다. 처음에는 (댓글로) 설득도 많이 하고 바꿔보려고 했는데도 이제는 기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가 병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시대에 배은심 어머니는 ‘모든 참사의 어머니’라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당신도 그런 자리에 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여러 희생자를 존중해 주고 추모해 주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왜 한국 사회는 이렇게 됐을까. 감독님 역시 참사 유가족들을 다루는 영화를 준비하고 상영하며 그런 공격을 많이 받지는 않았나?
장 감독
댓글을 딱 한 번 봤다. 역시나, 악플이었다. ‘불쌍한 사람들 그만 이용해 먹어라’ ‘천벌 받는다’ ‘시체 팔이 하지 마라.’ ‘그만 우려먹어라’ 등. 레퍼토리는 같다. ‘아직도 이런 댓글을 단다고?’는 생각이 들었다.
리치리치
저 역시 용산 참사 유족을 만나서 기사를 쓴 적 있는데, 언제적 이야기냐- 등의 악플이 달려 힘들었다. 유족들이 보면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았다.
리치리치
"사람이 다육이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인터뷰가 매우 인상적이었고 심금을 울렸다. 유경근 님의 아이들이 피자를 함께 먹었다는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그 피자를 먹었던 사진을 보여주고, 그 아이들은 모두 세월호 희생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숨이 멎은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이 영화의 내용이 어떻게 이어지든, 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장 감독
잘 봐주셔서 오히려 더 감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살아있었던,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걸 잊게 되는 것 같다. 여기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리치리치
저 역시 영화를 보며 (출연한 유가족 분들의) 말씀 하나하나 버릴 문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말을 와닿게 잘하실까, 그 점이 좀 슬프기도 했다.
장 감독
그렇다. 농축된 이야기인 것 같다. 만들어서 대사로 쓰라고 하면 쓸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
리치리치
다큐를 보는 내내 우리는 왜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추모를 하지 못할까, '추모가 거부되는 사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다큐를 기획하고 제작하시면서 혹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 느낀 점이 있는지, 어떤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다.
장 감독
저 역시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참사는 기본적으로 애도와 연결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애도를 계속 개인의 몫으로 두고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고착하다 보면 추모 공원을 만드는 것도 왜 공동체에서 그것을 해야 하냐-는 질문이 나오고, 시신을 수습하는 것도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것도 결국 유가족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후에 그것을 위해서 질문하는 것도 비난한다. 그런 흐름이 참사 이 이후의 과정을 개인의 몫으로 남기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회적 애도’가 왜 공동체의 몫으로 되어야 하는 질문 역시 저변에 우리 확실한 이유라든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의 슬로건도 ‘기억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가 많은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지 않겠다는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 단편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한 논의도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애도는 산자를 위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다시 잘 살아가기 위한 것이고. 왜 죽음을 인정하는 과정도 결국엔 망자와 새롭게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것이고, 그 과정은 길게 이어지는 과정인데 우리가 애도의 시간을 너무 짧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사회적으로) 애도해도 되는’ 기억이 (따로) 있는 것 같다. 6.25 참전 용사 등 국가에 기여한 죽음들은 공인돼서 애도의 자리가 따로 마련되지 않나. 그들의 납골당, 무덤을 혐오 시설이라고 하지 않는데 말이다.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통 사람들의 죽음을 공동체가 애도해야 한다는 것을,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게 아닌가 싶다. 제주 4.3 참사 사건에 대해서도 공동의 기억으로 가져간 것이 오래되지 않았고, 피해자들도 모욕을 당할까 봐, 이야기를 숨기는 게 오래되다 보니까 말이다. 그 이전에 우리가 충분히 추모하지 못했던 것을 잘 자리를 잡기 위한 것이 애도도 잘 해갈 수 있는 이후의 과정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왜 납골당은 혐오 시설이 되었을까, 왜 죽음을 터부시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는 넣지 않았는데, 파리를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템박’이라는 공간이 보았는데, 지하철 사고로 8명이 희생된 사건에서 한 유족 아버지가 주축으로 만든 곳이었다. 다른 재난 참사 연대체를 만들었는데 정부 차원에서 그 연대체가 법무부와 연계해서 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재난 참사가 일어나면 그 현장에 그 유족들을 파견한다 가서 심리 지원을 하고 유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변호사와 같이 해결할 수 있게 정부 차원에서 시행한다고 한다. 당신들이 유족이니까 그들의 마음을 제일 잘 알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것이 축적된 문화일 수도 있고 정부의 업일 수도 있지만 참 좋아 보였다. 그런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주변을 산책하는데 동네 묘지가 너무 자연스럽게 공원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신기했다.
왜 한국에서 납골당은 혐오 시설이 된 것일까. 혐오 시설이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태원 참사도 그렇고 삶을 지속하려면 참사를 어둡게만 기록되는 걸 멀리하고 싶었다. 세월호 유족들도 추모 공원의 이미지를 기존의 추모 공원과 다르게, 아이들이 소풍 올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얘기한 것처럼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런 다른 이미지가 생기면 받아들이는 문화도 많이 바뀔 것 같다.
리치리치
우리 사회가 굉장히 이중적이라고 느낀다. 결국 진상 규명부터 유족들이 직접 얘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 있는데 그것마저 말하는 것을 반대한다. 세월호 10주기 관련 인터뷰하는데, 인터뷰하던 분 중에 ‘10년이 지났으니까 웃을 수도 있고 나도 이제 행복하고 싶다’라고 하신 분이 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아, 내가 이 내용을 써도 될까?’는 생각이 들더라. 알게 모르게 다들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삶은 계속되는 거고 평생을 아픔 속에서 살 순 없는 거고. 그분들의 감정도 회복이 돼야 맞는데, 끊임없이 이것도 안 해주고 이것도 보기 싫고 하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생각이 많이 들더라.
리치리치
인서트 영상으로 참사 현장에 자란 풀이나 꽃, 일상 속 자연을 주로 넣으신 것 같다고 느꼈다. 관객 관점에서 여러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는데, 감독님의 제작 의도는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하다.
장 감독
처음에 현장을 찾아갔던 이유는 ‘영화에서 참사를 어떻게 재연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였다. 최대한 기존의 영화와 다르게 하고 싶고, 유족들의 말에 집중을 하고 싶은 생각이어서 자극적인 이미지를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이분들은 기억의 세월을 살았으니까, 이미지로는 망각의 현장을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현장을 찾았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허허벌판인 경우가 많았다. 참사 이후의 시간을 계속해서 살아낸 건 자연물, 풀밖에 없었다. 사실 찍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기도 했다. 그 시간을 기억하는 건 자연물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연물들은 시간이 순환돼서 자라나고 죽고 살아왔으니까, 그 시간을 오롯이 살아왔으니까 그 이미지 안에서 유족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리치리치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이라는 제목이 ‘다육이 이야기’도 그렇고, 풀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풀이라는 게, 비극의 현장에도 예쁘게 자라나지 않나. 어떻게 보면 가족들의 바람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인서트로 어린 풀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넣은 것 같아서 여러 생각이 드는 장면이어서 감독님의 의도였는지 궁금했다. 나아가 감독님이 이전에 말한 것처럼 납골당에 소풍 오는 것처럼 다른 공간으로 조성해서 추모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느꼈다.
리치리치
차기작으로 트라우마에 대해 다루려 한다고 들었다. 다루려는 내용과 어떻게 접근하려고 하시는지 궁금하다.
장 감독
트라우마와 정신장애에 관련된 내용이다. 여러 당사자를 만나 보면, 여성들은 성폭력 경험에서 출발한 경험이 많다. 어린 아이거나 10대 시절, 특히 친인척 관계에서 피해를 본 경우가 많다. 대부분 혼자서 묻고, 또 묻고 삭히다가 증상으로 발현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자해는 가벼운 수준이고 환청이나 환시 등의 심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공통적으로 가해자가 친족인 경우 어려운 점이 많다. 어릴 때면 부모와 나는 동일시되는 존재다. 그 사람을 부정하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이고 나의 자존감도 낮아질 수밖에 없고, 자신을 사랑하기 어려워진다. 말하기도 어렵고 털어놓기도 어렵고. 그런 내용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개봉은 2025년 하반기를 목표로 잡고 있다. 촬영은 이미 들어간 상태다.
리치리치
<세월2>가 나올 수 있을까
장 감독
현재 작업물이 끝나고 나중에 더 성숙해지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월> 작업 이후 옴니버스 다큐 프로젝트 속 세월호 참사 관련된 꼭지를 맡아서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한계를 느꼈다. <세월>을 작업하던 시선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때 <세월 2>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