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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리치] 재난이 우리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

2024.11.28

본문

언론인 트라우마 연구회 '리치리치(Reach-Rich)'가 지난 11월 20일 모임을 가졌습니다. 연구모임에서 제공한 강의 내용을 공유합니다.


□ 주제 : 재난이 우리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

□ 강사 : 이윤호 소장 (한국재난심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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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리치 회원들이 이윤호 소장과 기념 촬영한 모습> 


□ 재난이란? 재난 이후 사람들은

재난은 그 자체가 '상실'의 경험입니다.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상에 규정된 '재난'의 정의에도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을 말한다고 돼 있습니다. UNISDR에서는 재난을 “갑작스럽게 발생해 지역사회의 기본 조직과 정상 기능을 와해시키는 큰 규모의 사건으로써 외부의 도움 없이는 극복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러한 정의를 참고한다면, 우리는 '스트레스'의 개념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스트레스'는 본래 “외부에서 일어나는 자극에 대한 개인의 심리적 반응”을 가리킵니다. “가족은 스트레스이다” 이 명제는 맞을까요? 정확히 보자면 가족은 '스트레서'(stresser, 스트레스 요인)입니다. 

<스트레서-나-스트레스> 즉 스트레서와 스트레스 사이에 내가 위치한 관계도에서 '내'가 '자극'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같은 요인이 나를 유익하게 만들기도 하고 힘들게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스트레스'란 말을 '경미한 고통'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지만 사실 스트레스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는 어떻게 구분될까요? '트라우마'는 그 덩어리가 굉장히 강력하고 큰 것입니다. 나를 조금씩 괴롭히는 스트레스는 삶에서 정말 다양하게 많이 경험하게 되지만, 트라우마란 내가 겪어보지 못했고 감당할 수 없는, 그야말로 생명을 위협당할 만한 강력한 자극을 의미합니다. 이때는 평소와 다르게 크고, 심각한 반응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재난>과 비교해 보자면, '나'라는 몸은 지역사회에 빗대서 볼 수 있고, 내가 제대로 신체적 또 정신적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는 정도의 사건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럴 때 스트레스 대처를 위해 술과 담배를 가장 흔히 사용합니다. 재난을 겪은 지역사회, 혹은 트라우마를 겪은 개인은 알코올과 약물 사용이 증가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약물의 사용이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공급이 많아지면서 가격이 내려갔고, SNS에서는 키워드 검색만으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사용하게 되는 연령도 훨씬 낮아졌습니다. 여기에 청소년 인터넷 도박 중독과 학교폭력, 성매매와 같은 사회 문제들이 함께 연동되어 발생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재난 이후 사람들은 인지적/신체적/행동적/정서적/영적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이 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영적 반응입니다. 스트레스 리액션 중에 신에 대한 원망감이나 분노를 표현하게 됩니다. 실제로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제가 상담했던 70대 할아버지는 “내가 70 평생 해코지 한 번 안 하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신이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을 주느냐!”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이건 신앙심이 약해서 일어나는 반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세월호 부모님들 중에는 참사 이후 종교생활을 아예 하지 않는 분들이 많고, 아직도 술 없이 주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종교행위 중지, 종교적 망상이나 환각, 가치관의 변화는 굉장히 심각할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누가 봐도 기울어져서 곧 무너질 것 같은 집에 “어제 꿈에서 하느님이 다 괜찮다고 했으니 저 집에 들어가서 자겠다”라고 고집부리던 지진 이재민도 있었습니다.

 

Normal 상태에서는 Cognition(인지적) 반응이 Emotion(정서적) 반응 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In Crisis, 위기 상태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Emotion이 더 강력합니다. 보통 때보다 훨씬 더 각성되고 고조되면서 평소의 인지적 프로세스가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격앙된 이재민들을 많이 보죠, 이분들이 평소에도 그런 분들일까요? 물론 원래 다혈질인 분도 있겠지만, 그분들의 상태는 계속해서 심장이 빨리 뛰는, 흡사 직장인에 비유한다면 매일매일 사장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 같은 그런 긴장감에 몰려 있는 겁니다. 자극의 크기가 클수록 이러한 상태는 오랫동안 이어집니다. 물론 이러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난현장을 가든, 심리적 외상을 겪든,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이런 상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가 평소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반응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PTSD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5가지 기준이 반드시 필요한데, (1) 외상 사건(죽을 뻔한 경험)을 직접 겪거나, 보거나, 아주 가까운 사람이 겪었을 경우 (2) 침투 증상 (3) 자극 회피 (4) 인지·감정의 부정적 변화 (5) 각성과 반응성의 변화입니다. 30일 이상 증상이 지속돼 일상생활에 지극히 큰 영향을 주고, 제대로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불편감이 있을 경우 진단을 내립니다.


재난 지후 지역사회의 회복 그래프를 보면, 처음엔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여듭니다. 현장에 가장 많은 게 누굴까요? 취재진, 기자들입니다. 이때는 도움과 지원이 쏟아지고 따뜻한 미담도 생겨납니다. 그런데 이사를 해보면 아시겠지만 큰 짐을 나르는 것보다 작은 짐을 나르는 게 훨씬 더 오래 걸립니다. 재난 이후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동력과 관심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자원봉사자들도 다 떠나는 이때가 바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시기입니다. 그러다 배상과 보상 이슈가 생기면 지역사회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태안 유조선, 울진 동해 산불과 같은 재난에서도 지역사회가 마찬가지 양상을 보였습니다. 산불이 났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옆집에 불이 붙어서 열심히 진화해 줬는데, 그것 때문에 옆집은 주택 피해에서 '전파'가 아니라 '반파' 인정만 받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피해 보상 금액 규모가 현저하게 차이 나게 됩니다. 형님 동생 하던 이웃이 원수가 됩니다. 종국에는 “앞으로 저 집에 불이 나면 안 꺼줄 거야”, 이렇게 됩니다. 재난의 유형별로도 다릅니다. 수해는 균일하게 지형에 따라 피해를 입지만, 산불은 균일한 피해가 나지 않습니다.


재난 이후 차별과 혐오는 왜 생길까요? 심리적으로는 타자화, 다른 집단으로 구분하려는 경향으로 보입니다. 기존의 차별이 심화되거나 소수자나 취약계층에 대한 차별이 강화되고, 확증편향 오류가 생겨납니다. 피해자들의 특정 특성만 과도하게 부각하고, 상황적·구조적 요인을 간과하기도 합니다. 미디어 환경에서 정제되지 않은 보도, 선정적 보도들도 문제가 됩니다. 사건의 맥락보다 자극적인 요소만 강조하고, SNS 확산 효과가 심화됩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는데 특히 혐오 표현이 무분별하게 공유되고 증폭됩니다. 이러한 혐오 표현을 모니터링하고 즉각 대응해야 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공동체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결국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재난 참사에 대한 구조적 이해, 연대 의식 강화에 힘써야 합니다. 


□ 자살 심리와 자살 이후 개입

자살 심리에는 3I(Intolerable, inescapable, interminable)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죽고 싶어서 자살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분들은 '내가 겪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다 해보다가 자살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 방법을 택한다고 보면 됩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을 예전에 쓰기도 했는데, '선택'이라는 건 여러가지 옵션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인데,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분들은 선택이 정말로 그것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는 분들입니다. 자살 이후에는 죄책감과 책임자 찾기의 역동이 일어납니다. 실제 자신이 자살 사건에 가깝든, 멀 든 간에 '내가 이랬으면 괜찮았을까'라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가족이나 조직 안에서는 책임자 찾기가 시작됩니다. 요즘은 기업의 어떤 특정한 팀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날 경우, 블라인드에 30분 내로 글이 올라오고, 그 팀의 해당 팀장은 이미 '살인자'로 낙인찍히는 경우도 일어납니다. 


자살 이후 개입에는 <근접성의 원칙>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상 도움받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도움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 '가까움'에는 물리적 개념까지 포함됩니다. 회사 내에 상담자를 상시 배치하는 것도 그런 원칙에 기반합니다. 내가 원하는 상담사를 찾으면 비용을 지불해 주는 방법 역시, “너에게 심리적으로 이용하기 편한 곳, 너의 이용 근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을 찾으라”는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 한 번 가면 일정 시기가 지나서 “오신 지 얼마 됐다, 무슨 검사하실 때 됐다” 이렇게 문자가 오는 것처럼, 도움이 필요하지만 도움을 잘 못 받는 분들에겐 이런 식으로 건강하게 접촉하는 근접성의 원칙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자해는 자살과 성격이 다른지' 질문을 주셨는데, 자해 행동도 자살에 포함됩니다. 자살은 내가 의도를 가지고 스스로 내 생명을 끝내는 행위를 모두 아우릅니다. 그중에 당연히 자해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의 사회적 이슈 중 하나가, 아이들이 자살의 의도가 없는 자해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자해 흔적, 손목에 남은 흉터를 '바코드'라고 표현한 방송 프로그램의 랩을 본 뒤 또래들 사이에서 이 흔적이 있어야 그룹에 낄 수 있는 문화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자살 사건의 위험성을 평가할 때 중요한 기준은 의도와 치명성, 두 가지입니다. “내가 죽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얕은 접시물에 코를 박으면, 이것이 위험할까요? 위험성 상/중/하 중에 어디에 속할까요? 대부분 '하'라고 평가하시는데요, 물론 치명성에서는 하찮지만, '죽어야지'라는 그 진정한 의도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더 높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훨씬 더 치명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 재난의 회복과 언론인을 위한 돌봄 방법

재난의 회복을 위해서는 공동체가 회복해야 하고, 자조와 협조, 공조가 필요합니다. 일하는 중에 외상을 겪었다면,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가? 도움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는가? 가 중요합니다. 사회적 지지를 받을 때 얻는 긍정 효과와,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할 때 부정 효과 중 어떤 것이 더 강력한지 알아본 연구가 있습니다. 부정적 효과가 더 큽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수해로 인한 이재민을 돕지는 못할망정, 이들에 대한 혐오 표현만큼은 못 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언론사라면 댓글 차단 기능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난을 겪는 사람들은 어떤 도움을 받을까요? 역시 연구에 의하면, 공적 도움을 받아 회복하거나 탈출하는 경우는 4%라고 하고, 90% 이상은 스스로 나오거나 이웃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즉 최소한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알아야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인 노인 가구의 문제가 뭘까요? 대체적으로는 혼자 사는 노인이 훨씬 편하게 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위기 상황에 타인의 개입이 늦다는 것입니다. 

사전 질문이 들어온 대리 외상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단계별로 봤을 때, 당사자-가족-초기대응요원-지역주민 순인데, 언론인들은 3번째 중요도, 초기대응요원에 포함됩니다. 실제 9.11 테러 이후 미국 심리학회는 “전 세계에 방송이 반복적으로 나갔는데 테러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 TV 시청자들을 외상 사건에 포함할 것이냐”를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그 자체를 무조건 외상 사건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들도 군인, 경찰, 소방처럼 대리 외상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면 진단을 받을 만큼 어려움을 겪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군/경/소방 조직의 초기 대응이 잘 안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단 강인함이 요구되는 조직 문화다 보니, “내가 어렵다”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큰 낙인이 되어버렸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그나마 소방관 조직은 많이 좋아졌다고 보입니다. 일단 지방청 단위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고, 서울이든 지역이든 업무 범위가 전체적으로 비슷합니다. 이러한 업무의 동질성, 그리고 조직의 규모 면에서 대응에 유리했습니다. 반면 경찰 조직은 하는 업무 자체가 다양하게 분화돼있고 조직이 크다 보니 일시에 분위기를 바꾸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소방 경찰 모두 자살예방교육 자체를 꼬박꼬박 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2016년 한양대 연구팀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경찰이 직무에서 겪을 수 있는 10가지의 외상 사건 리스트(terrible ten)를 뽑았습니다. 예를 들어 아동이 포함된 사건, 동료가 사망한 사건, 언론이 주목한 사건 등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사건과 관련된 직원은 무조건 심리지원을 받게 합니다. '나 혼자 심리지원을 받는다니 나만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낙인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전체 상담을 진행한 뒤 심각성이 감지되면 개별 상담을 따로 진행합니다. 언론인들도 이러한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러분이 피해자나 유가족을 인터뷰할 때는 심리적/물리적 안전과 자기 인식이 필요합니다. 기자 스스로도 내가 이러한 사람을 인터뷰할 수 있을지, 그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약속을 변경하거나 다른 사람을 보내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재난과 상실을 겪은 취재원은 통제감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재난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통제력을 상실하는 경험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제감을 획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몇 시에 만나실래요?” 상담의 시간과 공간을 정할 수 있게 하고, 상담 시에는 “어디 앉으실래요?” 이런 아주 작은 세팅이지만 통제감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좋습니다. 인터뷰할 때 자기소개를 잘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르는 사람과 관계 만드는 첫 단추가 자기소개입니다. 내가 왜 여기 와있고 무엇 때문에 컨택 하는지를 분명히 말씀드려야 합니다. 답을 줄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취재 요청이나 질문이 계속된다면, “O월 O일 O시까지 답 드릴게요”라고 말씀하셔서, 불확실성을 없애줘야 합니다. 나의 바람이나 기대를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이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봤더니, 무엇이 효과가 있었을까요? 바로 “CCTV”였습니다. “누군가 저 뒤에서 나를 보고 있다”는 그 인식만으로도 자살 생각이 상당 부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난 네가 요구하는 것을 해줄 수 없어, 다만 들어줄 수는 있어”라고 명확하게 얘기하셔야 합니다. 자해를 반복하는 경우, '그 행동을 그만해'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힘든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살 시도자가 10명 있다면 그중에 실제 자살 사망자는 1명 정도 꼴입니다. 그런데 60세 이상이 되면 그 비율이 4:1까지 높아집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숙고해서 치명적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10대로 가면 100:1로 낮아집니다. 충동적 시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얼음을 녹을 때까지 손에 쥐고 있기”나 “손목에 고무줄을 튕기기” 같은, 고통스럽지만 해롭지 않은 방법도 추천됩니다. 결국 이들의 통제감을 존중하고, 퇴로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 해법일지 모릅니다.